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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한국연구원

오늘날의 디지털 공간은 어떤 신체를 환영하고 또 배척하고 있는가? / 김지윤

다른 많은 일들과 마찬가지로, 게임을 ‘잘’하기 위해서는 연습이 필요하다. 이 말은 게이머들에게는 당연한 진리일 테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잘 와 닿지 않을 수도 있겠다. 나 역시 게임에 열정을 쏟기 전까지는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총 게임, 그거 그냥 마우스로 조준해서 클릭하면 되는 거 아니야?”

2017년 겨울, 주변 친구들을 따라 FPS(First-Person Shooter) 게임 <오버워치(Overwatch)>(2017)를 시작했다. First-Person Shooter 장르는 그 이름이 지칭하는 것처럼, 게임 캐릭터와 같은 일인칭 시점을 공유해 화기를 쏘는 게임들을 일컫는다. 게이머인 내가 캐릭터의 그래픽 신체 속에 앉아 그의 손과 발을 움직이고 적을 공격해야만 하는 것이다.

FPS 게임에 경험이 없었던 나는 <오버워치>의 디지털 신체에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았다. 내 캐릭터를 원하는 방향으로 이동시키는 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았고, 내가 어디에 있고 누가 옆에 있는지 분간조차 되지 않았다. 캐릭터를 둘러싼 게임의 3D 그래픽 환경도 낯설었다. 화면이 빠르게 회전하면 멀미가 났다. 주변에서 전투가 시작돼 시끄럽고 혼란해지면 상황 판단이 되지 않아 허둥지둥 거렸다. 이렇게 스스로와 주변을 통제하지 못하는 나는 이 디지털 공간 속에서 가장 취약한 개체이자 손쉬운 먹잇감이 되었다. 당연하게도 나는 게임을 즐길 수 없었다.

그러다 어느 날 결정적인 순간이 찾아왔다. 앞에 있는 적 머리 위에 표시된 생명력 바가 그가 빈사 상태에 있다고 알려주고 있었다. 미처 생각도 하기 전에 손가락이 저절로 움직였다. 당시 설정해놓았던 근접공격 키(마우스 엄지버튼)를 누르자, 그 일격으로 적이 쓰러졌다. 처음으로 ‘재밌다!’고 생각한 순간이었다. 어릴 때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되었을 때나, 양 손으로 피아노를 연주할 수 있게 되었을 때 느꼈던 즐거움과도 비슷했다. 특정 움직임을 반복해 의식하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몸이 움직이게 되는 단계에 도달해야만 얻을 수 있는 재미였다.

남들이 보기에는 단지 마우스 버튼 하나를 눌렀을 뿐이지만, 나는 그 순간에서야 게임의 신체에 온전히 이입했던 것이다. 이후 어느 순간부터는 나도 남들처럼 게임 공간 속에서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FPS 게임에서 요구되는 동체시력과 반사 신경, 키보드와 마우스 사용법에 대한 훈련 경험이 없었던 내가, 게임의 3D 그래픽 공간에서 원하는 대로 움직이고 때로는 버그를 이용할 수 있을 만큼 낯설었던 신체와 공간에 적응했다는 증거였다.


이런 게임 경험은 나에게 한 가지 궁금증을 던져 주었다. 사람들은 어떤 과정을 거쳐 디지털 신체를 통제할 수 있게 될까? 혹은 반대의 관점에서, 디지털 환경은 어떤 게이머를 수용하고 어떤 게이머를 밀어내는가?

많은 이론가들이 미디어와 신체의 관계를 다뤄왔다. 미디어 이론가 마셜 매클루언(Herbert Marshall McLuhan)은 미디어가 신체 감각의 연장이라고 표현했고, 현상학자 메를로-퐁티(Maurice Merleau-Ponty)는 인간이 특정한 도구를 이용하는 몸의 기술을 습득함으로써 세상을 향해 나아간다고 보았다. 다시 말해, 인간은 물리적 인터페이스인 키보드와 마우스의 사용법을 몸에 익혀 디지털 공간을 향해 감각과 존재를 확장할 수 있다. 우리는 게임을 통해 물리적인 공간과는 다른 감각을 익히고, 전에는 시도하지 못했던 역할을 수행하거나, 새로운 인간관계를 맺기도 한다. 그리고 그런 새로운 감각, 역할, 그리고 관계들은 게임이 아닌 다른 영역에도 영향을 끼치고 삶을 변화시킨다. 미디어를 연구하는 대학원생이었던 내가 FPS 게임에 도전함으로써 얻게 된 것들도 그러한 변화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게임 세계에 발을 들이면서 나는 감각, 신체, 그리고 공간과 미디어와의 관계를 다루는 이론들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졸업 논문으로 게임에 관해 쓰기로 마음먹으면서 여러 게이머들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를 가지기도 했다.

하지만 노력과 연습만으로 모든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게임의 디지털 신체에 이입할 수 있게 될까? 그렇다면 충분한 ‘연습’의 양은 어떻게 정해지는가? 디지털 공간은 정직하게 노력하면 누구나 보상을 받을 수 있는 평등한 유토피아던가?

여러 게이머들을 만나 인터뷰를 해본 바에 의하면 그렇지 않았다. 게임의 기술을 습득하는 과정이 수월하게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은 경우도 많았다. 가령, 게이머의 나이나 성별 등 육체적인 요인, 개인 컴퓨터의 보유 여부나 키보드와 모니터 등 주변 기기 성능 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이 중 내가 특히 주목했던 것은 성별 간 차이였다. 게임 연구에서 성차를 보는 연구들은 주로 게임 캐릭터의 표현방식과 내러티브에 집중한다. 하지만 게임 그래픽과 서사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게이머의 ‘플레이’에서도 성별 간의 차이가 보였던 것이다. 남성 게이머들의 경우, 게임의 문법과 기술을 익히는 것을 비교적 수월하게 여겼거나, 어린 시절 이미 다양한 게임을 해봐서 비슷한 훈련이 되어있었던 경우가 많았다. 반면, 보이스 채팅으로 드러나는 목소리가 여성적이거나 어릴 때부터 ‘여자아이’로 양육된 경험을 가지고 있는 여성 게이머들은 자주 어려움을 토로했다. 예를 들어 한 인터뷰 참여자는 그 전까지의 게임 경험이 거의 없어 FPS 게임을 ‘잘’ 하지 못한다는 아쉬움을 드러냈다. 만약 어릴 때부터 <서든어택>(2005)과 같은 게임을 접해봤다면 지금 플레이하는 <오버워치>도 잘 할 수 있었을 것 같다는 것이다.

나아가 많은 여성 게이머들은 자신만만하게 높은 목표를 지향하는 대신 겁먹거나 주눅 든 태도로 게임을 한다고 고백한다. 이들이 소극적인 태도를 가지게 된 배경에는 여성 게이머에 대한 편견이나, 보이스 채팅을 켰을 때 비난을 받은 경험들이 있었다. 정치철학자 아이리스 영(Iris Marion Young)은 메를로-퐁티가 말하는 몸을 통한 세계의 확장이 여성에게 똑같이 적용될 수 없다고 말한다. 여성의 몸은 사회에서 연약하고 불완전한 것으로 여겨지며, 성장 과정에서 행위의 주체가 되기보다 대상이 되는 경험을 반복하기 때문이다. ‘계집애들은 원래 게임을 못 한다‘는 댓글을 읽거나 목소리를 드러낸 뒤 희롱을 당했던 경험을 반복한 여성 게이머들은, 비난을 피하기 위해 쉬운 역할만을 선호하고 주목받는 상황을 꺼리게 된다. 그래서 여성 게이머는 대체로 컨트롤러의 조작법을 익히고 게임의 신체와 디지털 가상공간에 적응하는 데도 어려움을 겪는다.

<행복의 약속(The promise of Happiness)> 서문에서 사라 아메드(Sara Ahmed)는 미하이 칙센트미하이(Mihaly Csikszentmihalyi)의 몰입(flow)개념을 비판한다. ‘몰입’은 도전적인 목표를 위해 다른 모든 것을 잊어버릴 정도로 집중하는 즐거운 무아지경 상태를 말하는데, 게임 연구에서 게임에 대한 게이머의 이입 상태를 정의하기 위해 자주 인용되는 개념이기도 하다. 사라 아메드는 주체들이 특정 공간에서 몰입하고 즐거움을 느끼는 것을 개인의 노력과 심리적 속성으로 환원하는 칙센트미하이의 설명에 반대한다.

“주체들이 '몰입' 상태가 아닐 때 그들이 만나는 세상은 저항적이며, 행동을 가능하게 하기보다는 차단한다. 그래서 불행한 주체들은 세상을 이질적인 것으로 경험하고 세상으로부터 소외되었다고 느낀다. (...) 만약 어떤 신체들이 세상을 저항적으로 경험하지 않는 이유가 세상이 어떤 신체들을 다른 신체들보다 더 잘 '수용'하기 때문이라면 어쩔 텐가?”

- Sara Ahmed (2010). The Promise of Happiness. 성정혜, 이경란(역) (2019). <행복의 약속>. 서울: 후마니타스.

오늘날의 디지털 공간은 어떤 신체를 환영하고 또 배척하고 있는가? 어쩌면 우리는 게임에서도 ‘실력’, ‘노력’, ‘공정’과 같은 단어들을 내세우며 ‘몰입’하지 못하는 존재에 대한 비난을 정당화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게다가 청소년기의 게임 경험은 디지털 기술에 대한 지식과 흥미로 이어지며, 따라서 게임에서의 젠더 편향은 정보 기술 접근성과 디지털 리터러시 문제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여자들이 게임을 ‘잘‘하기 위해 겪는 어려움을 단지 게임일 뿐이라며 웃어넘기지 말아야 한다. 가상과 실재의 경계가 흐려지고 디지털과 물리적인 공간 사이의 위계가 사라지고 있는 이 시대에, 특정 신체를 가진 사람들이 디지털 가상공간에 이입하고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은 분명 현실적인 억압이다.


김지윤(디지털 문화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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