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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인양요’는 역사 용어로 합당한가 / 노관범

최종 수정일: 3일 전

우리나라 역사책을 보면 난해한 단어가 수두룩하게 나온다. 예를 들어 1866년 프랑스 함대가 조선에 침입했던 사건이 있다. 이를 가리켜 ‘병인양요’라고 부른다. 병인양요 네 글자는 교과서에 나오니까 외워서 아는 말이지 일상 생활에서는 거의 쓰이지 않는다. 병인양요가 어려운 것은 전체 글자수가 많아서도 그렇겠지만 이 말을 구성하는 ‘병인’와 ‘양요’에도 원인은 있다. 먼저 ‘병인(丙寅)’은 옛날에 연도나 날짜를 표기하는 간지의 하나인데 조선 말기 고종 시기의 병인년은 1866년이다. ‘양요(洋擾)’는 서양의 소란이라는 뜻인데 한국사 사료에서는 1866년부터 출현하고 주로 병인양요를 가리켰다. 다만 ‘양요’와 함께 ‘양란(洋亂)’도 쓰였기 때문에 ‘양요’가 서양 세력의 조선 침입을 인식하는 독점적인 용어는 아니었다. 이를테면 강화도 거주 여인의 병인양요 체험을 알려주는 한글 문헌 이름이 ‘병인양란록’이다.

     

병인양요이든 병인양란이든 이 당시 한국인의 일반 언어로서는 가치가 있다. 문제는 당대인은 이 말을 듣고 얼른 이해했지만 현대인은 그렇지 못한 상황에서 당대인의 언어를 현대인의 언어로 옮길 방법은 없을지 그 방안을 찾는 것이다. 이 경우 양요 또는 양란의 경우는 한문 사료 표현을 그대로 가져올 것이 아니라 사건의 내용에 합당한 이름을 다시 찾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병인양요는 병인년에 서양의 소란이 있었다는 뜻일 뿐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슨 사건인지 알려주지 않는다. 병인양요를 체험한 당시의 한국인은 이렇게 불친절하게 또는 간략하게 표현해도 그것이 무슨 사건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것을 학습해서 알 수밖에 없는 현재의 한국인에게는 정확한 사건 명칭이 필요하다.

     

관련하여 박은식의 『한국통사(韓國痛史)』는 이에 관한 선구적인 지혜를 들려준다. 박은식의 『한국통사(韓國痛史)』(1915)를 한글로 번역한 미주본 『한국통사』(1917)의 목차를 보면 ‘병인양요’를 서술하는 장절에 ‘불국 군함을 대파’라고 썼고 ‘신미양요’를 서술하는 장절에 ‘미국 군함을 격퇴’라고 썼다. 과연 프랑스 군함을 ‘대파’했고 미국 군함을 ‘격퇴’했는지는 의견이 엇갈리겠지만 병인년 서양의 소란 또는 신미년 서양의 소란이라는 뜻밖에 갖지 못한 병인양요 또는 신미양요보다는 훨씬 훌륭한 사건 이름이다. 물론 고려말기 ‘경인왜구’ 또는 조선중기 ‘임진왜란’ 또는 ‘병자호란’ 같은 네 글자 사건 이름에 친숙한 분들이라면 간편하게 ‘병인양요’ 또는 ‘신미양요’라고 부르는 것이 더 편할 수 있다. 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고려전기 거란의 침입이나 고려후기 몽골의 침입에 대해서는 이런 식으로 네 글자 사건 이름을 만들지 않았다고 해서 별로 불편함을 느끼지는 않는다.

     

논자에 따라서는 절충안으로 ‘병인양요’을 한글로 풀어서 ‘1866년 서양의 소란’으로 하면 어떨까 하는 의견을 제시할 수도 있겠다. 이것은 병인양요라고 하는 당시 사람들의 언어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오늘날 그 언어의 뜻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번역했다는 장점이 있다. 문자 번역으로서는 잘 옮겼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한글 번역을 하는 순간 또 다른 난관에 직면하게 된다. ‘1866년 서양의 소란’이 병인양요에 국한된 일인가? 같은 해 ‘제너럴 셔먼 호 사건’이 일어났다. 무장 상선이 서해 바다에서 평양 앞까지 무단으로 침입해 난동을 부리다가 화공으로 격침된 이 사건도 ‘1866년 서양의 소란’에 포함될 수는 있지만 이것을 병인양요라 부르지는 않는다. 병인양요의 문자적 이해가 ‘1866년 서양의 소란’인데 이렇게 풀어줄 경우 ‘제너럴 셔먼 호 사건’과 혼동될 수 있다면, 이것은 한글 번역의 문제에 앞서 출발어에 해당하는 병인양요의 의미론적 문제일 수 있다. 병인양요의 언표가 병인양요의 실질을 드러내는 정합적인 명칭이 될 수 없다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문제의 본질은 간지 쪽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은 하도 유명한 사건이니까 이를 모르는 한국인은 거의 없겠지만 막상 ‘임진’ 또는 ‘병자’ 같은 간지를 만나면 대번에 몇 년 하고 신속하게 서력 환산이 가능한 사람들은 드물 것이다. 이럴 경우 굳이 간지를 앞에 붙여서 사건 이름을 외운다는 것은 괜스리 사건 이름을 복잡하게 만드는 역효과를 일으킬 수도 있다. 물론 역사적 사건의 연대기적 기억법에 미치는 간지의 역할은 정당하게 평가될 필요가 있다. 왜란이 아니라 임진왜란, 호란이 아니라 병자호란, 양요가 아니라 병인양요, 이런 식으로 시간적 단락을 설정하는 간지가 첨부됨으로써 일반적인 사건과 역사적인 사건이 구별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간지는 간지일 뿐이다. 60갑자의 차례를 보여주는 위치 정보에 지나지 않는다. 사실 간지 그 자체로는 역사적 시간을 드러낼 수 없다. 병인양요의 병인을 역사적 시간이 투영된 합당한 언어로 풀이해 주고자 한다면 1866년 같은 기계적인 숫자 정보가 아니라 ‘조선 흥선대원군 집권기’ 같은 실질적인 역사 정보가 필요하다. 이런 견지에서 병인양요의 합당한 사건 명칭의 하나는 ‘조선 흥선대원군 집권기 프랑스 함대의 조선 침입’이 아닐까. 이 사건을 그 당시에 병인양요 또는 병인양란이라 부르기도 했다는 부가 정보를 첨가할 수는 있겠다.

     

지금까지 역사 교육의 측면에서 병인양요 대신 합당한 역사 용어가 무엇일까 이 생각 저 생각을 늘어놓았다. 그렇지만 이것이 역사 연구의 측면에서 지금까지 사용해 왔던 역사 용어의 효용성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현행 역사 용어가 정착하기까지의 사연이 있고 내력이 있는데 그것을 정확히 아는 것이 중요하겠다, 그런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사료 용어 병인양요가 어찌하여 역사 용어 ‘병인양요’가 되었는지는 그 자체로 한국 근대 사학사의 중요한 탐구 주제이다. 이것은 ‘병인양요’에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이 언제부터 역사 용어로 정착했는지, 그 과정에서 함께 경합했던 다른 용어는 없었는지, 역사 용어로 정착할 당시 이를 주도했던 특정한 역사 서술 또는 역사 인식은 무엇이었는지,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어찌 보면 ‘병인양요’는 작은 문제일 수 있다.


노관범(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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