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에서 주요 도시들 중 하나인 로사리오(Rosario)를 출발하여 점점 더 남쪽으로 향했다.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Buenos Aires)의 거리들은 아시아의 유럽 식민지나 유럽의 차이나타운만큼 복잡한 매력으로 눈길을 끌었다. 미술관에서는 마르타 미누힌(Marta Minujín)과 앤디 워홀(Andy Warhol)의 젊은 시절 공동작업을 전시 중이었고, 밤에는 그 도시의 클럽에도 가야겠다고 결심했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나의 운신을 책임지고 있는 현지인 일행의 강요로 다음 목적지로 이동해야 했기 때문이다. 멘도사(Mendoza), 네우켄(Neuquen), 그리고 지도를 보지 않고서는 이름을 기억할 수 없는 마을들을 거쳐, 나는 아메리카대륙 가장 끝에 매달려 그대로 남극까지 이르는 길목, 파타고니아로 가는 길이었다.
며칠이나 도로를 달렸을까. 처음에는 도로 양쪽으로 농장이나 초원이 펼쳐져 있었는데, 사흘째 어느덧 사막 한가운데를 가르고 있었다. 벌건 절벽의 꼭대기는 땅보다 오히려 하늘과 가까워 보였고, 그것들은 아무도 없는 곳에서 주름이나 상처를 들여다보듯 지층과 절리를 감추지 않았다. 그때 내가 보았던 것은 '시간'과 '자유'였다. 볼 수도 셀 수도 없다기에 사람들이 추상명사로 분류해 놓은 이 둘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는 듯했다. 경관 체험이야 나이가 든 다음으로 미룰 수 있다고만 여겼었는데. 눈앞에서 지질구조를 선명하게 드러내는 대자연에 둘러싸여 시간과 자유를 목격한 이십대의 그 날을 맞는 순간, 그간 내가 틀렸음을 단숨에 알았다. 그리고 남은 인생이 크게 달라질 것도 직감했다. 고집을 부린 친구에게 나는 진심으로 감사했다.
그럼에도 살다보면 놀라야 할 이유는 계속해서 생기는 법이다. 그 웅숭(雄崇)한 기억을 여러 해가 지나 동네의 아주 평범한 골목 안에서 더듬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번 여름, 합정동 주택가에 자리한 전시공간 '합정지구'는 돌연 공사에 들어가더니, 슬그머니 빵집으로 변신한 후 '지질학적 베이커리'라는 간판을 달았다. 작가 '안데스'가 그곳에서 여는 전시의 제목이기도 했다. 나는 호기심에 이끌려 이 전시를 두 번 관람하였다. 그리고 안데스산맥으로부터 나를 따라온 시간과 자유에 관한 지질학적 기억을 작가에게 고백하기도 했다.
안데스는 지난해 서울의 산을 탐사할 참가자를 모집하여 도봉산, 북한산, 안산, 인왕산을 올랐다. 이렇게 모인 ‘빵산별원정대’에게 안데스는 빵 하나를 나누어 주었는데, 초콜렛과 견과류가 박힌 스콘이었다. 화강암을 닮은 이 빵은 지질학적 단서가 되었다. (…) 《지질학적 베이커리-화강암의 맛》에서는 빵산별원정대가 산을 탐사하는 일련의 과정을 볼 수 있다. 앞서 말한 독특하고 기이한 워크습은 지하전시장에서 볼 수 있다. 1층 전시장은 베이커리가 된다. 빵산별원정대는 워크습의 마지막에 자신이 발견한 지질학적 특성, 화강암의 형성원리를 떠올리며, 자신만의 베이킹 레시피를 만들어 공유했다. 안데스는 매일 합정지구에서, 레시피를 만든 참가자와 빵을 굽기로 한다. 그 레시피는 성공할 수도 있고 완벽하게 실패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빵을 함께 구우며 다시 한번 빵과 산의 관계를 떠올리는 것이다. (…) 모든 참가자들이 함께 작은 빵을 먹고 조사를 시작하면 안데스의 빵과 지질학의 세계로 들어가게 되고 둘 사이의 비약은 점차 사라진다.
소개글 발췌, 전그륜_합정지구 큐레이터
전시는 2021년 7월 2일부터 8월 1일까지 열렸다. 그리고 7월 27일, 유난한 더위에도 불구하고 날마다 오븐 앞을 지켜야 했을 한 달간의 전시 겸 퍼포먼스가 막을 내려가던 때였다. 작가는 온라인에서 관객과의 대화를 가졌다. 보이지 않는 곳곳에서 관객들이 자신만의 카메라를 켜고 모였다. 작가의 카메라 앞에서 함께한 패널은 전그륜 합정지구 큐레이터, 이진실 미술평론가, 조숙현 아트프레스 대표. 작가와 패널의 소감뿐 아니라, 사전조사 내지 실시간 채팅으로 들어온 관객의 질문과 코멘트를 나누는 시간이었다.
이제부터는 이들이 그날 나누었던 대화다.
<작업의 동기가 무엇인가?>
안데스:
2013년 안데스산맥 종단 여행을 했다. 그곳은 해발고도가 높고, 지형이 잘 보이게 드러나 있었다. 타고 가던 차량이 잠시 쉬는 동안 조각 케이크를 먹다가 다시 차에 올랐는데, 바깥의 풍경이 조금 전 먹었던 케이크와 비슷해 보여서 비교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상념에 젖어 열 몇 시간이 흐르고 나니, 베이킹을 통해서 산의 형상을 추적할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지질학적 베이커리’의 단서가 되었다. 그 뒤 유튜브 콘텐츠나 지질학 협업자를 찾아나서면서 공부를 시작했다. 지식에 대한 욕망을 느끼고 ‘빵산별원정대’를 결성하게 되었다. 같이 다니고, 같이 공부하자는, 이를테면 학습의 방법론적 도전이었다.
그렇게 작년에 네 개의 산에 올랐다. 각각의 멤버는 자기가 다녀온 산의 레시피를 제작하기로 했다. 그런데 어떤 참가자가 “베이킹까지 하면 완벽하겠다”고 의견을 제시하여 이 전시가 이루어졌다. 열 가지 서로 다른 레시피를 가지고 참가자들과 함께 빵을 구웠다.
[사진 6-11. 레시피와 빵, 사진_타별 스튜디오]
<어떤 빵들이 나왔을까?>
안데스:
우선, 누운 수평절리 식빵. 서울의 산들은 절리가 발달해 있다. 절리는 대개 수직 방향으로 발달하는데, 인왕산 절리는 수평이다. 그래서 식빵을 눕혀서 그 모양을 구현했다.
그리고 치마바위 딜스콘. 절리를 따라서 소나무와 풀이 자라라는 것을 형상화했다. 바위의 갈라진 틈바구니에 수분이 모이고, 광물이 모여 식생에 유리하게 변형이 되곤 한다. 절리를 따라서 식생이 발달한 모양이다. 바위를 뚫고 올라오는 풀도 있다.
모닝롤 같이 생긴 매운 핵석 빵도 있다. 화강암이 기반암을 뚫고 나오는 구조적 측면을 보여주는 빵이다. 식빵과 스콘을 연결했는데, 구울 때 스콘 반죽이 스윽 나와서 달팽이 모양이 되었다. 반을 가르면 달걀이 들어있다. 풍화되어 떨어져나간 가운데 핵석을 예쁘게 간직한 돌맹이의 모습을 닮았다. 이것을 수석 수집가들은 ‘봉황알’이라고 부른다. 빵 안에 넣은 삶은 달걀과 어울리는 맛을 찾으려고 간장과 고춧가루도 넣었는데 맛이 별로였다.
[사진 12-13. 전시 '지질학적 베이커리 온라인 TALK' 접속 화면, 왼쪽부터 조숙현, 안데스, 이진실, 전그륜]
<가장 맛있었던 빵은?>
안데스:
여럿 있는데 그 중에서 초코씨앗 화강암소보루. 석영, 장석, 운모를 표현한 빵이다. 절리야채 샌드위치도 역시 수평절리를 표현한 것인데, 세 개 층의 코로케 맛이 다 달라서 인상적이었다.
<산은 고정적이고 딱딱한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안에서 대류가 일어나고, 움직임이 발생하고, 불순물은 양파껍질처럼 풍화된다. 이러한 변화가 신기하다.>
안데스:
특히 화강암이 그렇다. 마그마가 지표 바깥으로 터지면 화강암이 되고, 지표 안에서 굳으면 화강암이 된다. 화강암은 누르는 힘으로 만들 수 있는데, 현무암은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모르겠다. 아! 머랭! 또는 술빵? 술로 발효시키는 빵.
<준전문가 수준으로 지질학을 공부하고, 그걸 빵으로 재현! 겉바속촉, 속바겉촉? 그런데 빵의 맛에 대해서는 아무도 고려하지 않았나? 그렇다면 신기하다. 맛에 대한 고민이 있었을지 궁금하다. 전시장에 오는 사람들에겐 맛이 더 중요할 수도 있잖은가.>
안데스:
빵에서 굵은 소금이 씹히자 “짜다”고, 그걸 인상 깊어 한 참가자가 있었다. 광석이 돌맹이 속에서 알알이 보이는 것처럼 그걸 맛으로 느끼면 좋겠다고 생각한 순간이었다. 다양한 맛이 따로따로 느껴지면 좋겠더라.
그런데 나는 거의 형태학적으로만 접근했다. 우리 빵, 맛없다고 소문났다. 내가 아직 빵을 잘 못 만든다. 기본적인 제빵만 익힌 상태이다. 화학적으로 무엇이 될 법하고, 무엇이 아닌지도 모른 채 재료를 탐구한다. 별사탕, 초콜렛 등등. 유튜브 따라하니까 맛있다고들 하는데, 여기 와서 “뭐가 맛있어요?” 하고 찾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맛있는 걸 먹으려면 빵집에 가는 게 낫지 않을까?
<익숙하지 않는 게 입에 들어오면 ‘이게 뭐지’ 싶을 텐데, 그런 게 과연 현대미술적이다.>
안데스:
맞다. 너무 못 먹을 맛이어도 곤란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게 더 좋다.
<관객들에 의해 전시장이 비로소 빵집으로의 변신을 완성한 듯하다.>
안데스:
갤러리 없어지고 빵집 생긴다는 소문에 주변이 시끌시끌했다. 주민들이 소소한 관람을 즐기던 곳이었다. 공사 중일 때 어느 관계자가 “아녜요, 이거 전시예요.”라고 설명한 적을 빼놓고는, 우리끼리 입을 맞추기로 했다. 없어지는 걸로. 주민들에게 거짓말 했다.
그런데 빵을 (무료로 드리는 것이므로) 팔지는 않는다고 하면 오히려 당황한다. 사는 걸 더 마음 편히 먹는다. 자본주의에 익숙하다는 증거다.
<미술관에 오는 것도 일종의 소비행위다. 비정형적인 것을 구하러 오는 거다. 그렇지만 미술관이 관람객을 오로지 ‘소비자’로만 환원시켜 버리면 미술관 스스로 딜레마에 빠진다. 합정지구는 지나가던 행인이 무심결에 지나가기 어려운 위치에 있다. 굳이 찾아오는 사람이라면 미술 애호가라고 봐야 한다. 그런데 ‘팔지 않음’에 가로막혀 긴장감이 발생한다. 공공미술이라고 이름 붙여야 할까? 그러면 공공을 비껴가는 것도 있다는 말인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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