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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한국연구원

“발레를 아무나 한다고?” - 턴아웃의 굴레에서 자유로워졌습니다 / 김보슬

2012년에 발표된 다큐멘터리 영화 <First Position>은 발레 유망주로 성장 중인 미국 10대 청소년들의 배움과 일상을 담고 있다. 이 영화는 내가 어린 시절에 읽었던 러시아 발레의 전설, 안나 파블로바의 전기를 통해 상상하던 무용 연습실과는 사뭇 다른 정경으로 주의를 환기했다. 파블로바와 같은 근현대 발레 거장들을 여럿 배출한 나라가 바로 러시아다. 가벼운 몸짓과 날렵한 바디라인을 위해 날마다 최소한의 열량, 최대한의 연습량으로 매진하는 무용가의 모습은 어쩐지 그들의 날씨처럼 창백하고 근엄했다. 그런 인상이 나의 뇌리에 깊이 박혀 있었다. 하지만 <First Position>이 조명한 미국 학생들은 나이에 걸맞게 열심히 먹고, 즐겁게 움직이고, 밝게 웃음 지었다. 그렇다고 훈련이 만만한 것은 결코 아니다. 탄탄한 기량으로 이들은 세계적인 콩쿠르에서 주목받는다. 그렇기에 여기서 재발견한 발레는 더 이상 암울하고 고통스러운 연습을 통해서만 만들어지는 춤도, 연습으로 점철된 엄숙한 삶을 강요하는 춤도 아니었다.


[사진1. 영화 <First Position> 포스터]   이것은 두 대륙의 교육 풍토, 또는 두 시대의 춤 정신 간에 어떤 차이가 있음을 가리키는 걸까? 무엇이 그 차이를 만드는 걸까?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예체능 교육은 전문가 양성을 목표로 조기교육을 수반하기도 한다. 특히 발레는 특별한 골격 정렬을 요하기 때문에 10세 이전에 전공자 과정에 입문하곤 한다. 골반을 외전시켜 측면으로 벌리는 '턴아웃 (turn out)'이 되지 않으면 유연성이 떨어질 뿐 아니라, 발레 동작을 안정적이고 정확하게 해 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국 전통춤에서와 달리, 발레에서는 양발을 바깥으로 돌려 180도를 이루도록 하는데, 이때 발만 돌리는 것이 아니라 발끝과 무릎이 같은 방향을 바라보게 하는 게 원칙이다. 이렇게 서면 비로소 영화의 제목인 '1번 자세 (first position)'를 할 준비가 된다.

 

아홉 살 무렵, 나는 발레를 배우기 시작했다. 엄마는 내가 바른 자세를 갖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수업을 받게 했다. 커다란 연습실에서 예중, 예고 입시를 준비하는 언니들의 전공 수업도 보았다. 그러나 성인이 되어 취미 삼아 다시 시작한 발레는 훨씬 도전적이었다. 사람들은 예쁜 레오타드와 랩스커트를 입는 것만으로 일상에서 활력을 느끼고 즐거워했지만, 나는 어릴 적 잠시 배웠던 '정석'에 갇혀 있었다.

 

  '턴아웃이 되지 않으면 발레 동작을 한 게 아니야!'  

 

그럼에도 이미 성인이 되어 굳을 대로 굳어 버린 몸은 머리가 기억하는 원칙을 따라갈 수 없었고, 무리한 연습을 강행하다가 부상을 입기도 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양다리의 각도는 120도 정도를 넘어서기 어려웠다. 기본에만 충실하자는 마음이었지만 그조차 욕심이었다. 이럴 땐 그야말로 아는 게 병이다. 거울 속 내 모습은 지행합일을 완전히 위배했고, 괴리감을 견디지 못한 나는 한국무용으로 갈아탔다.

 

이즈음 '발레'와 '피트니스 (fitness)'를 합성한 '발레핏' 같은 신조어가 등장했을 만큼 발레는 몸매 관리나 운동 수단으로도 인기를 얻고 있다. 발레 동작에 기반한 건강한 신체의 웰니스는 꽤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거리 간판에서는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취미 발레반' 강습 광고가 심심찮게 보이고, 소셜미디어에서도 비전공자들의 발레 챌린지 콘텐츠가 지속적으로 눈에 띈다. 영상 속 성인 학생들의 발과 무릎이 전면을 향해 있는 것을 나는 발견하고야 만다. 턴아웃이 안 되었다. 그러나 속단해서는 안 된다. 드물긴 하지만 이들 중에는 무대 데뷔를 할 만큼의 실력자도 배출되고, 비전공자 성인들이 만든 발레단 또한 공연계에서 활약 중이다. 그럼에도 우아한 발레복이나 소품에 환상을 품는 이들이 여전히 더 많은 듯하다.

 

공교롭게도 한때 나 역시 그랬다. 그랬던 탓인지 나는 성인 취미 발레에 부정적이었다. 내 생각에, 발레에 깃든 독특한 정신이자 태도는 바로 철저한 희생정신이다. 그것은 한 치의 게으름도 허용하지 않고 완벽에 가까워지려는 부단한 노력을 의미한다. 연습을 하루 쉬면 하루만큼 제자리인 것이 아니라 하루 이상 퇴보한다는 치열한 마음으로 임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정신을 외면한 채 외관만 동경한다면 무슨 진정성이랄 게 있을지 의심되었다. 그러한 가벼움은 엄밀한 의미에서 제대로 된 대중화도 아닌 것 같아서 반감이 들었던 것이다. 발레의 시각적 이미지에서 똑 떼어 온 '예쁜 여성'의 고정관념 ㅡ 하늘거리는 치맛자락과 어깨선을 드러낸 레오타드, 드가의 그림 등 ㅡ 은 그간의 역사에서 여성성을 왜곡하고 아름다움의 기준을 제한하는 측면도 있었다. 그러한 장애물을 전면에 내세운 채 발레를 '우아하고 고급스러운 서양 춤'으로 대하는 태도가 어쩐지 앞뒤가 맞지 않으며, 가스라이팅에 준하는 반칙인 듯했다.  

 

그렇다면 발레는 꼭 고행에 가까운 자기희생을 치른 전문가만 출 수 있다는 것인가? 나는 오랫동안 그렇다고 믿었다. 더 나아가, 바로 그 점 때문에 발레는 신체 움직임을 재료로 하는 무대예술일지언정 '춤'일 수는 없다고도 믿었다. 무릇 춤이라면 흥이 나고, 누구나 흥겹게 출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 믿음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은 바로크 춤을 접했을 때다. 바로크 시대의 궁정 무용은 오늘날 발레의 기원을 이룬다. 16세기 이탈리아 궁정 연희에서 시작된 발레는 17세기 프랑스에서 체계화되기 시작했는데, 이때 프랑스의 발레마스터들은 바로크 춤의 우아하고 장식적인 스텝과 제스처를 발레 동작에 도입했다. 따라서 초기 발레는 바로크 춤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바로크 춤에서 유래했다고 볼 수 있다. 발레가 점차 무대예술로 발전하며 기교를 더했지만, 그 뿌리는 바로크 춤에 두고 있는 것이다. 


[영상 1. 바로크 춤]

 

이 여인의 춤사위를 보면 바로크의 특징인 "달리고 튀어오르는 생동감"을 느낄 수 있다. 상류사회의 춤이라는 특성상 품위와 매너를 중시하며, 종교적이고 신화적인 주제를 표현할 때도 많지만 여기엔 활달하고 유쾌한 느낌이 묻어난다. 이것이 비록 주관적인 느낌의 영역이라 할지라도, 바로 이 느낌을 계기로 나는 초기의 발레를 다시금 떠올려 보게 되었다. 그것에 젖줄을 대고 있는 바로크 춤은 당대 농민들의 민속춤을 일부 차용하기도 하면서 풍성한 연회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리니 발레는 그 기원에서부터 즐거움과 활기가 함께했을 것이다. 잘 길들인 뼈대와 조각 같은 근육으로 완벽한 동작을 (형상을) 만드는 엄격함 대신 감흥을 담아내고자 고안된 춤이 아니었겠는가. 


[영상 2. 안나 파블로바 생전의 춤, 연도 미상]

 

무용연습 환경과 장비가 꾸준히 발전되고 새로운 교수법이 도입됨에 따라, 신체의 한계는 계속 극복돼 왔다. 그에 따라 실전 테크닉은 점차 고도화되는 경향이 있다. 영상으로 전해지는 안나 파블로바의 공연을 보면 요즘 발레리나들과 상당히 다른 스타일로 추는 것을 알 수 있다. 금시대 최고로 꼽히는 실비 길렘 같은 사람과 비교해 보면 그렇다, 고난도 기술보다는 고개짓과 표정에서 전해지는 연기 요소가 강렬하다. 감정을 활용하고, 감성에 호소하는 ‘춤’을 추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19세기 발레는 지금과 다른 패러다임을 지나고 있었을 것이다. 로맨틱 발레에 이어 클래식 발레의 시대가 펼쳐졌다는 무용 이론을 들추지 않아도 된다. 시대와 사조의 변화를 거듭하는 가운데 음악과의 교감, 사람과의 교감, 내적 출렁임을 이끌어낸 것이 춤의 성취일 테니까.  


[영상 3. 실비 길렘, <돈키호테>의 키트리를 추는 모습]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프로들을 바라보는 내 나름의 기준은 달라졌다. 동작과 선을 엄정하게 구사하는 것을 넘어 ‘춤추는’ 프로 발레리나・발레리노들이 비로소 보이기 시작했다. 정말 잘 추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때부터 어른들의 서툰 발레에 대한 선입관에도 변화가 생겼다. 턴아웃이 되지 않아도, 발등이 뻣뻣해서 아치 모양이 나오지 않아도 얼마든지 춤추는 이들이 있었다. 이것은 오히려 테크닉 정교화 이전의 발레 원형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내가 과거에 가졌던 고정관념은 신체를 조이는 코르셋보다 더 강하게 관념을 옥죄었다. 이 점은 오래전에 무용계에서 이미 한계점으로 도출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모던댄스의 출발이기도 하다. 모던댄스의 선구자들은 발레의 포인트슈즈를 벗어 던졌다. 

 

그런데 가만. 어쩌면 턴아웃이 더 문제였는지 모르겠다. 일정 연령이 지나면 마스터하기 어려운 신체 조건 때문에 나는 이 장르를 전문성에 가두고, 춤으로부터 유리시켰다. 이런 내 오랜 세뇌를 춤다운 춤으로 해독解毒해 주는 것은 이미 성장기를 지나 온전히 취미로 즐기는 발레일지도 모른다. 어른들과, 몸집이 큰 사람과, 살갗이 창백하거나 또는 어두운 사람과, 구부정한 사람과, 뻣뻣한 사람이 기꺼이 출 수 있다면 이념으로서의 발레 위에 춤으로서의 발레가 부드럽게 포개어질 것이다.  


[사진 2, 3. “발레는 어릴 때 시작한 소수만을 위한 춤이 아닙니다.”_출처: Runqiao Du Ballet Coaching]



김보슬(Otis College of Art and Design 공공예술 MF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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