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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한국연구원

나는 오월에 왜 울었나 -사람의 서식지에 관하여- / 김보슬

언젠가부터 서울 합정역 사거리를 도보로 통과하기가 어려워졌다. 로터리 한복판을 바라보고 있는 신축 분양 주택 모델하우스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 아주머니들의 호객행위 때문이다. 그들은 갑 휴지나 마스크 따위의 판촉물을 양손에 가득 들고 행인들을 모델하우스로 잡아끄는데, 행인들은 그들을 사이비 종교 포교단원 쯤으로 대하며 빠른 움직임으로 피해간다.

오월이 한창인 지금, 꼭 일 년 전 이 무렵의 어느 날을 떠올려 본다. 어린이날이어서 근무를 하지 않았고, 날씨는 화창했다. 직장인으로서 마땅히 이 둘의 조합에 기분이 날아갈 것만 같았어야 했으나 나는 아주 무거운 마음으로 거리에 나섰다. 목적지까지 걸어갈 요량이었는데, 하필 합정역 사거리를 거쳐야 했다. 예의 어느 아주머니에게 붙들렸다. 내 발길은 열심히 임무를 수행 중인 그에게 가로막혔고, 나는 손사래를 치면서 거의 달아나듯 걸음을 재촉했다. 하도 집요한 이를 만났던지라 나를 쉽게 놓아주지 않을 모양이었다. 계속 따라오는 그 아주머니를 향해 나는 발끈 성을 내고 말았다. “너무들 이러시니까 사람들이 여길 지나가기 힘들잖아요, 아세요?” 나지막이 말했지만 히스테릭한 목소리가 역력했다. 바로 거기서부터 아주머니는 더는 나를 붙잡지 않았는데, 그 뒤로 내 발걸음은 홀가분해지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무거워지는 것이었다.

나는 왜 무고한 이에게 짜증을 내었던가! 우리 어머니 같은 평범한 사람이 몇 푼을 벌기 위해 길거리에서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있었을 뿐인데, 나는 버럭 화를 내었다. 단지 내 마음이 괴로움에 처해 있다는 이유로 그래서는 안 되는 것 아닌가. 얼마나 무안했을까, 나는 내 비통함을 타인에게 전가했을 뿐이었다. 채 100미터를 더 걷지 못하고, 사거리로 되돌아가 두리번댄 끝에 아르바이트 무리 사이에서 그 아주머니를 찾았다. 그를 외면하는 사람들만 있을 뿐 좀체 그에게 먼저 말 거는 사람들은 없을 것만 같은데, 이번엔 내가 용기를 내어 말을 붙였다.

“아주머니, 사과드리려고 다시 왔어요. 좀 전에 신경질 내서 죄송해요. 오늘은 저에게 너무 속상한 일이 있는 날이라…”까지 말하고는 더 말을 잇지 못했다. 눈물이 핑 돌았기 때문이었다. 이것을 도대체 무슨 드라마라고 해야 하나? 비극인가, 희극인가? 당황한 아주머니는 “내가 미안해요. 나도 집에 아가씨 같은 딸 있어요, 아유, 힘든 일 있구나. 우리 때문에 사람들이 불편해하는 것도 알아요. 울지 마요, 이걸 어떡해.” 하면서 어쩔 줄 몰라 하였다.

봄바람이 부는 공휴일, 합정역 사거리 한복판에서 흐느끼는 여성과 그 앞에서 쩔쩔매는 초로의 모델하우스 홍보 요원. 자, 이런 일은 왜 일어났는가. 이유는 밝히지 않겠지만 나는 갈기갈기 찢어진 그림자를 끌고 폐허 같은 햇살 속을 걷던 중이었다. 그래도 내 명료한 의식은 이 난감한 장면을 빠짐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숫제 젖은 뺨을 닦느라 안경을 벗고 소매로 눈을 가리며, “제가 아주머니 앞에서 울고 있으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여길 거예요. 오늘은 이만 가고, 다음에 꼭 따라가서 설명 들어 드릴게요. 죄송해요.”

그런 일이 있고 나서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 그 아주머니를 다시 마주치지 않았다. 가급적이면 그 구간을 피해서 다녔고, 운이 좋게 아르바이트 요원들이 일하지 않는 날에 그곳을 지나기도 했다. 그런데 다음에 설명을 듣겠다 하였던 약속만큼은 잊을 수 없었다. 아주머니에게 조금의 괴롭힘을 당하고 크게 민폐를 끼친 것 같아서였다. 한 해가 지나자, 그 모델하우스는 분양 주체가 달라져 다른 물건을 홍보하고 있을 뿐, 그 앞 사거리는 여전히 ‘이모님들’이라 불리는 요원들의 출몰지이다.

며칠 전이었다. 일 년 전의 약속을 지킬 결심으로 그곳을 지나다가 자발적으로 포획되었다. 아마 이전의 그 분과는 다른 사람이었겠지만, 비슷한 연령대의 ‘이모님’께 약간이라도 보탬이 되길 바랐다. 모델하우스 안에 들어서니 경기권 어딘가에 착공된 오피스텔을 분양 중이었다. 몇몇 다른 구경꾼들이 오가고, 홍보관 직원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나를 맞이했다. 직원의 설명에 의하면 인공섬, 인공서핑 복합테마파크, 혁신기업들의 배후 수요를 모두 누릴 수 있는 이 신개발 도시만의 투자 미래는 밝았다. 세 가지 평수의 ‘잘 빠진’ 실내 디자인은 모두 실속 있는 복층구조와 감각적인 풀옵션 설비를 갖추고 있다고 하였다. 얼마만큼 대출이 가능하고, 얼마만큼 현금이 준비돼야 하고, 향과 뷰에 따라서 얼마만큼 시세 차익이나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는지까지 꼼꼼히 설명을 들었다. 나는 시공사와 시행사가 어디인지를 묻는 것도 빼놓지 않았다. 대답을 듣고도 이내 잊어버릴 것이었지만 예비 투자자 배역을 충실히 소화하기 위해서였다.


전 세계적 스마트도시 열풍에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듯이, 기술과 기업가정신은 장소에 혁신을 불러온다. 이즈음 타이베이 도시계획 프로젝트의 최종 목록에는 움직이는 물체 감지 및 밝기 조정을 통해 에너지 효율을 달성하는 가로등, 실시간으로 공석을 표시해 주고 주차 위반 티켓을 발행하는 주차 시스템, 길잃은 동물을 추적하는 동물 제어 시스템, 폐기물을 자동으로 분류하고 재활용하는 스마트 쓰레기통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홍보관에서 받아온 사업계획서에 실린 조감도는 바로 그러한 도시의 이미지를 닮았다. 가난한 자들이 살 곳은 없으므로 일용직 근로자들이 도시의 바깥에서부터 먼 출퇴근 거리를 감수해야 한다는 그런 도시를 말이다.

인천의 송도국제신도시 또한 도시계획의 혁신적 사례로 널리 알려져 있다. 몇 해 전 내가 살았던 곳이다. 당시에는 입주민이 워낙 적어서 주유소 하나 없이 온 동네가 흡사 운전연습장 같았다. 태양에 반짝이는 초고층 건물들에서는 두바이를, 해무에 젖은 밤의 경관에서는 배트맨의 고담시를 연상하는 동안 그 동네와는 기묘한 정이 깊었다. 송도의 건물들에는 한국 상가 건물에서는 일반적으로 쓰이지 않는 서구식 창틀, 문틀, 손잡이 따위의 자재가 공급돼 있었다. 한때 건축디자인을 공부했던 나에게 건물의 얼굴은 창틀과 문틀, 손잡이 같은 것으로 결정되고, 건물의 얼굴들이 전부 모여 거리와 도시의 경관을 만든다. 그래서 나는 송도를 ‘한국의 밴쿠버’라고 농담 삼아 이르기도 했다. 관광객은 주민센터를 보고 홍대거리의 ‘수노래방’ 같아 보인다고도 했다. 간판들에는 알파벳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응? 저게 뭐지? B, U, D, O, N… 아, 부동산.’

근처에 있는 KAV는 Korean American Village라는 뜻이다. 재미동포타운. 어떤 이가 자조적으로 “미국 코리아타운에 모여 살던 게 그리워서 여기서도 모여 살겠다는 컨셉인가?” 하여 잠시 갸우뚱하다가 웃음을 터뜨리고 만 적이 있다.

그럼에도 나는 송도동을 좋아했다. 수평과 수직을 모두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삐까번쩍한 마천루들 사이에 빈 땅이 많아서, 해가 질 무렵 지평선이라는 걸 볼 수 있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좋았다. 그것만으로도 한국에서 자주 느낄 수 없는 감각이 깨어나는 곳이었다.

송도나 서울 같은 대도시에 살던 나는 지금은 남도의 작은 섬을 수시로 들락거리며 일주일에 세 번이나 네 번쯤 섬 위를 걷는다. 붓 가는 대로 쓰는 신변잡기적인 글이라는 수필의 정의에 의하면, 글과 길은 그 신변잡기성 때문에 때때로 비슷한 처지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붙잡히고 가로막히고 정처 없으면서도, 끝끝내 어디론가 향하다가 이러저런 것들과 섞여 군락을 이룬다.

얼마 전에는 생명다양성재단에서 하는 작은 행사에 초대되어 식물학 박사님과 함께 이화여대 안의 산책로를 걸었다. 그러다가 나무의 가지치기를 하는 것을 두고 생태학자, 조경전문가, 도시계획가 등의 입장이 저마다 다른 것에 관하여 대화가 잠시 오갔다. 굵고 튼튼한 경제목을 얻어야 하는 이에게는 가지치기가 유용하지만, 자신과 같은 생태학자들은 자연을 자연답게 두는 편을 옹호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수명이 백 년 가까이 된다는 높은 나무의 꼭대기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덧붙였다. 입장은 서로 다를지라도 하나의 작은 생명이 저렇게 자라나 무엇이 될지, 그 수많은 가능성을 여러 가지로 상상해 보아야 한다고. 그 자리에서 생명에 사랑이 필요함을 다시 확신했다.


어김없이 오월이 되었는데 합정동도, 두바이를 닮은 스마트도시도 아닌 섬길을 나는 걸었다. 보도가 따로 없는 어느 국도변을 산책 코스로 정해두고 기회가 될 때마다 여길 걷는다. 여전히 사는 맛은 쓰고 아리지만, 머나먼 섬까지 쓸려온 나는 죽음의 충동에는 휩싸이지 않는다. 자신 안의 생명, 그것이 실천되지 않고서 어떤 다른 생명을 사랑하고 어떤 다른 생명체의 서식지를 지켜낼 수 있겠냐는 목소리를 바로 내 안으로부터 들었던 참이다. 이번에는 아무도 나를 멈춰세우지 않았지만 홀로 걷는 길에서 다시금 조용히 눈물을 떨구었다. 환한 햇살 속에서, 희망의 눈물은 질문으로 이어졌다.

앞으로 어디까지 가야 할까? 도시나 섬을 떠나, 사람의 미소서식지는 궁극적으로 어디일까?

김보슬(Otis College of Art and Design 공공예술 MF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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