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신참’은 역사 용어로 타당한가? / 노관범
- 한국연구원
- 2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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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역사 용어에는 구본신참(舊本新參)이라는 말이 있다. 글자 그대로 ‘구’에 근본하고 ‘신’을 참작한다는 뜻이다. 우리역사넷에 따르면 이 말의 뜻은 ‘옛 규범을 근본으로 삼고 점진적으로 서구 제도와 문물을 받아들이자는 광무개혁의 기본 정신’이다. 얼른 들으면 그럴듯하다. 교과서나 개설서는 모두 이런 식으로 설명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과연 정확한 설명인가?

일단 구본신참 네 글자는 역사 사료에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부터 말하고 싶다. 본래는 승정원일기에 나오는 어떤 구절을 역사학자가 축약해서 만든 말이다. 그 구절은 모두 두 가지이다. 하나는 ‘솔구장이참신규(率舊章而參新規: 옛 법을 따르되 새 법을 참작한다)라는 구절이다. 1896년 8월 18일자 기사에 있다.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승정원일기]](https://static.wixstatic.com/media/e687c0_b4355ec5b97d4594b4e6c6f659168017~mv2.png/v1/fill/w_980,h_364,al_c,q_85,usm_0.66_1.00_0.01,enc_avif,quality_auto/e687c0_b4355ec5b97d4594b4e6c6f659168017~mv2.png)
다른 하나는 ’구규위본참이신식(舊規爲本參以新式: 옛 법을 근본으로 하고 새 법을 참작한다)이라는 구절이다. 1896년 12월 18일자 기사에 있다. 두 구절은 공통적으로 신구를 절충해서 법을 만들겠다는 의미로 읽히는데 옛 법과 새 법의 관계를 정립하는 원칙을 정하는 문제를 논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게 보면 두 구절의 공통된 축약 표현으로 ‘구본신참’이라는 말을 만드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 같다. 정확히 말하면 앞 구절은 ‘솔구참신(率舊參新)’이라고 축약해야 옳고 뒤 구절은 ‘구본참신(舊本參新)’이라 축약해야 좋겠지만 둘을 통칭해서 ‘구본신참’이라고 부르는 것 그 자체가 문제가 될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다만 앞 구절의 경우 갑오개혁 기간 ‘난역배’가 국권을 농단해서 의정부를 내각이라 개칭하고 국법을 파괴했는데 이제부터 내각을 폐지해 다시 의정부라 부르되 의정부에 대한 제도를 새롭게 정하겠다는 취지에서 ‘솔구장’과 ‘참신식’을 말한 것이었다. 뒤 구절의 경우 갑오개혁 이후 그 이전의 구법과 그 이후의 신법이 서로 들어맞지 않아 불편함이 많기 때문에 국법을 통일해 폐단을 줄이겠다는 취지에서 ‘구규위본’과 ‘참이신식’을 말한 것이었다. 이것이 ‘구본신참’이라는 역사 용어가 본래 놓여 있었던 사료의 현장이다.
여기서 몇 가지 문제를 지적할 수 있다. 먼저 두 구절 모두 아관파천 이후 대한제국 수립 이전의 역사적 상황에서 발화된 것이기 때문에 대한제국 기간의 역사를 이해하는 용어로 끌어오기에는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대한제국을 선포하는 과정에서는 황제국의 체제를 의식해서 ‘혁구도신(革舊圖新: 옛것을 갈아 새롭게 한다)’이라고 하는 새로운 표어도 등장했다. 신구에 대한 태도에서 ‘혁구도신’은 ‘구본신참’과는 전혀 다른 감각이었다.
아울러 두 구절 모두 국가의 제도와 법에 관한 내용이지 국가의 정책에 관한 표현이 아니라는 점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갑오개혁 기간의 내각 제도를 폐지하고 조선시대 의정부 제도와는 다른 새로운 의정부 제도를 만들겠다는 것, 그리고 조선시대의 법규와 갑오개혁 기간의 법규를 절충해서 새로운 법을 만들겠다는 것, 그것일 뿐이었다. 이것은 외관상 지나간 갑오개혁이라고 하는 문제적 과거를 수습하기 위한 조처이지 다가올 광무개혁이라고 하는 의지적 미래를 실현하기 위한 이념은 아니었다.
대한제국이 한편으로 서구 근대 문명을 따라잡는 국가 정책을 추진한 면도 있고 다른 한편으로 동아시아 고전 문명을 유지하는 문물 전장을 갖춘 면도 있지만 이러한 양면성이 다름 아닌 ‘구본신참’이라는 언어 자원에 의해 실현되었다고 주장하기 위해서는 물적 증거가 필요하다. ‘구본신참’이라는 말이 과연 대한제국의 국가 정책의 이념적 성격을 표현할 수 있는 적실한 용어인지를 보여주는 실제적 사료가 필요하다.
덧붙여 한가지 더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 위에서 ‘구본신참’의 사료적 근거로 승정원일기의 두 구절이 있음을 말했다. 하나는 1896년 8월의 ‘솔구장’과 ‘참신규’였고 다른 하나는 12월의 ‘구규위본’과 ‘참이신식’이었다. ‘구본신참’이라는 용어는 앞 구절의 ‘솔구참신’과 뒤 구절의 ‘구본참신’이 모두 신구에 대한 절충적 태도를 뜻하는 말이기 때문에 이를 통일해서 ‘구본신참’이라고 말을 만들어도 좋다고 가정해서 나온 것이었다. 하지만 과연 그러한가?
여기서 앞 구절과 뒷 구절의 ‘신’과 관련된 표현, 곧 ‘참신규’와 ‘참이신식’은 모두 새 법을 참작한다는 뜻으로 서로 다르지 않다. 신규와 신식은 다르지 않았다. 문제는 ‘구’와 관련된 표현이다. 곧 ‘솔구장’과 ‘구규위본’도 과연 동일한 뜻을 보이는 표현일까? 여기서 ‘솔구장’이란 시경의 ‘솔유구장(率由舊章)’인데 단순한 옛 법이 아니라 선왕의 옛 법을 따른다는 말이다.
특히 조선시대 법전의 경우 경국대전까지는 조선 창업으로 국가 제도를 정비하는 과정에서 국법을 사고했기 때문에 상황이 달랐지만, 경국대전 이후는 조선 법전의 후속 과정에서 ‘솔유구장’이 강조될 수밖에 없었고 이에 따라 수교집록, 전록통고, 대전통편 등은 한결같이 선왕의 구장을 따르고 선왕의 심법을 헤아림이 중요하다고 인식하였다.
따라서 조선후기 법 관념의 중요한 표현으로 ‘솔유구장’이 있었음을 생각한다면 ‘솔구장’의 문제란 단순히 제도론의 문제가 아니었다. 후왕이 국법 관념이 있는 사람인가, 국법 전통을 지키는 사람인가를 살피는, 그러한 가치 판단이 개입하는 개념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구규위본’과는 성격이 다른 것이 ‘솔구장’이었다. 구장과 구규는 같지 않았다.
역사 용어는 언어 맥락과 적용 범위를 정밀하게 헤아려야 한다. ‘구본신참’이 역사 용어로 내적 정합성(언어 맥락)이 있는가, 외적 적합성(적용 범위)이 있는가, 이 문제는 비단 ‘구본신참’에서 그칠 것 같지는 않다. 역사 용어의 끊임없는 개념적 성찰은 역사 지식의 항상적인 개화를 추동하는 힘이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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