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교사로 우리 교육 안에서 일을 한 지 10여 년이 조금 넘는 시간을 보냈다. 그 사이에 특수교육은 통합교육이라는 철학 아래에서 수많은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가야 할 길은 멀어 보인다. 비슷한 시기 혁신교육은 민선 교육감 시대를 맞이하면서 ‘모든 학생들을 위한 교육’을 목표로 교육이 가져야 할 본질과 그 안에서 교사가 나아가야 할 본질적 방향을 고민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통합교육도, 혁신교육도 우리 교육 안에서 한 명의 학생도 포기하지 않는 방향을 고민하는 일에서 시작되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특수교육 대상 학생들도 비장애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자신들이 원하는 환경에서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생각에서 통합교육이 출발했다면, 혁신교육은 경쟁이라는 패러다임을 벗어나 모든 아이들이 교실에서 행복한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생각하는 범위나 대상이 달라 보일지 모르겠지만 교실 안에서 모든 아이들을 위해야 한다는 생각은 같다고 본다. 같은 목표를 지향하며 시작된 두 교육철학(혹은 정책)은 각각 확산과 수렴의 역동적 전개 속에 가끔 접점을 찾기도 했다. 특수교육은 통합교육 안에서 시스템을 만들고자 노력했고 마찬가지로 일반교육(보통교육-특수교육과 구별된 용어로 사용된다.)은 혁신교육이라는 철학 안에서 정책적 변화를 만들고자 노력했다.
지난날의 수많은 교육 운동도 다르지 않았다. ‘통합’교육이나 ‘혁신’교육처럼 교육적 패러다임의 변화나 의미 있는 진보를 위한다는 기치 아래 ‘OO’교육이라는 용어들을 간판에 걸었고, 이를 필두로 시스템과 제도를 만들고자 노력해왔다. 이러한 ‘OO’교육 식의 브랜드는 분명 특정 시기에는 우리 교육의 진화를 모색하는 엄청난 영향력을 보여주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특정 정치 프레임이나 진영논리에 갇히며 그 본질이 호도되었고 유행처럼 한철을 보내고 지나간 경우가 많았다.
이런 흐름은 최근에도 반복되는 것 같다. 기존의 교육감들이 대거 바뀌면서 조금 다른 성향의 교육감들이 들어섰고, 혁신교육은 지워지고 있다. 대신 ‘미래’라는 용어가 전면에 등장하면서 시스템과 제도의 변화를 이끌고 있다. 처음은 IB였다. 글로컬 융합 인재 육성이라는 기치 아래 IB교육이 미래교육을 대변하는 듯 한층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하지만 이후 많은 논란과 이견을 거치면서 그 한계가 부각되는 듯하더니 이내 시들시들해지는 모양새다. 지금 ‘미래’교육은 다시 에듀테크로 그 방향을 선회한 듯 보인다. 하지만 이 역시도 에듀테크만이 답이 아니라는 이견들이 여기저기서 흘러나오면서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알 수 없다.
그러는 사이 “교권 추락”이라는, 새롭지 않은 일을 낯설게 만나야 하는 일이 벌어졌다. 서이초등학교 교사의 안타까운 이야기를 필두로 무분별하게 악용되었던 아동학대 사례들이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왔다. 그러던 중 특수교사들에게 적용된 아동 학생 신고가 수면 위로 흘러나왔고 그로 인한 직위해제, 특수교사들의 고충 등이 언론을 통해 한동안 회자 되었다(특이한 사례이지만 필자 역시 학부모가 아닌 학교장에 의해서 아동학대 신고를 당한 경험이 있다.). 교사들은 분노했다. 그 사이 그간 알려지지 않은 안타까운 선택을 한 교사들의 이야기들이 다시금 조명받았다. 교사들은 더 분노했다. 그 분노는 사상 유례가 없는 집회로 이어졌고, 검은 옷에 검은 마스크와 피켓을 들고 교사들은 거리로 나섰다. 이 집회의 영향이었을까? 아니면 수많은 교원 단체들의 결집된 힘에 영향을 받았을까? 아니면 정치적 포퓰리즘이 원인이었을까? 수많은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 교권 보호 4법 개정안이 통과되었다. 개정된 법이 실효성을 갖추기 위해서는 아직 가야 할 길이 많이 보이지만 “교권 추락”이라는 최근의 상황은 이렇게 차근차근 정리되어가는 느낌이 든다.
자, 이 지점에서 ‘본질’에 대한 고민이 깊어진다. 이러한 교육계의 지각 변동 안에서 우리를 지탱해 줄 수 있는 교육과 교사의 ‘본질’은 무엇일까? 최근 필자는 학생들과 함께 <본질과 현상>을 주제로 사회(인문학) 수업을 진행했다. 자칫 어려워 보일 수 있는 이런 수업이 어떤 의미가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많았지만 학생들의 삶을 생각한다면 필요한 수업이고 필요한 주제라고 생각했다. 접하기 쉽고 다양한 생각을 나누기 편한 주제를 고르느라 몇 날을 고민했다. 글자 그대로 ‘본질’은 사물에 내재 되어 있는 진정한 의미를 말하며 그 의미를 우리가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각기 다른 현상들로 표출된다. 이를 두고 필자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설명했다. 전화기의 본질적 의미는 ‘소식 전하기’이다. ‘소식 전하기’의 본질 즉 진정한 의미는 사람마다 달리 해석되기에 그 현상으로서의 전화기가 다양한 형태적, 기능적 스펙트럼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학생들과 필자가 함께 고민한 본질과 현상의 주요 주제는 <학생의 본질은 무엇인가?>였다. 자유롭게 오간 의견을 종합해서 내린 우리의 결론 다시 말해 ‘본질’은 <더 나은 나를 위해 열심히 배워야 한다>였다. 그 ‘본질’에 접근해 가기 위해 우리가 만들어 내야 할 ‘현상’은 우리가 더 나은 나를 위해 해야 할 행동이었고 이는 다음과 같았다(괄호 안의 의견은 학생의 의견을 교사가 재해석한 것이다.).
① 싫어도 열심히 해야 한다(재미있게 참여한다.).
② 발표를 많이 한다(적극적으로 참여한다.).
③ 수업 내용을 열심히 필기한다.
④ 자습을 한다.
이런 행동들을 꾸준히 한다면 우리가 1년 뒤에 겪을 변화도 예측해 보았다.
① 어른들의 잔소리가 줄어든다(중요한 이야기를 많이 한다.).
② 필기를 더 많이 한다(필기 실력이 는다.).
③ 발표를 잘하게 된다(자신감이 늘어난다.).
④ 까불지 않고 성숙해진다(집중력이 강해지고 차분해진다.).
아이들의 생각은 단순하면서도 큰 의미를 담아내고 있었다. 지극히 당연한 것들이지만 우리가 간과하고 넘어갔던 것들이었다. <본질과 현상>을 수업하면서 학생들과 함께 나눈 생각은 하나였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현상들을 잘 살펴서 그 안에 들어 있는 진정한 의미를 차근차근 찾아 나가야 한다는 것, 그것이 앞으로의 우리 삶에서 최선을 다해서 해야 할 일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최근 우리 주변에는 수많은 현상이 우리 눈 앞에 펼쳐지고 있다. 아이들에게 했던 말 그대로 우리는 그 안에 내재된 본질적 의미가 무엇인지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OO’교육이라는 방향 설정과 제도 및 시스템의 개선도 좋지만 교육이 가지고 있어야 할 본질은 무엇인지 그리고 추락한 교권 속에서 우리는 어떤 교사가 되어야 하는지 그 본질적인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그렇다면 교육과 교사의 본질은 무엇일까? 이 장면에서 언제나 하나의 장면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경기 혁신교육이 10년을 맞이하던 지난 2019년, 혁신교육 국제 컨퍼러스가 열렸고 미래 세션에서 발제를 맡은 어떤 선생님이 말했다. “이제는 우리에게도 우리 아이들이 따뜻한 마음을 가진 아줌마 아저씨로 나이 들어갈 수 있게 하는 교육이 필요합니다.” 그 말 속에 교육의 본질이 있다고 생각한다. 교육의 본질은 아이들의 마음을 다루는 것이다. 교육이 세상을 바꾼다는 믿음이 있다면, 그 교육으로 우리 아이들이 따뜻한 마음을 길러 세상을 바꿀 수 있도록 힘을 모아야 한다. 학부모와 함께 먼저 태어난 사람[先生]으로서 아이들에게 마음 쓰는 법을 보여주어야 한다. 사회를 바꾸어 나가는 힘은 거기에 있다고 믿는다.
물론 사회가 변화하기 위해서는 제도와 시스템이 변해야 하고 이를 위해 강제성을 부여할 법 제정이나 개정이 필요하다. 우리 사회는 교육을 두고서도 이런 변화를 먼저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법은 최소한의 도덕이다>. 독일의 법학자 엘리네크가 처음 말한 이 말은 <법은 적어도 도덕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법에 의해 바뀌어야 할 제도나 시스템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만들어 낸 ‘OO’교육도, 우리를 위한 교권 보호 4법도 모두 최소한의 도덕일 뿐이다. 우리의 교육과 교사를 지탱하고 지속시키는 것은 본질에 관한 고민이다. 우리의 교육과 우리 교사들이 어지러운 현상 속에서 본질을 잃지 않기를 바란다. 교육과 교사에 대한 본질적 고민은 오늘을 살아갈 수 있는 작은 위안과 힘이 되어주고 무질서와 혼란 안에 깃든 아름다운 꿈을 읽게 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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