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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한국연구원

과학책으로 수다 떨기: [[생물학적 풍요]] & [[현대사상 – 무지학이란?]] (하) / 박성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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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뿐만이 아니다. 피터 갤리슨이라고 아시는가? 세계적인 과학사학자로 우리나라에도 [[아인슈타인의 시계, 푸앵카레의 지도 - 시간의 제국들]]과 [[상과 논리 - 미시 물리학의 물질문화]]라는 그의 굵직한 저서들이 번역되어 있다. 앞의 책은 읽었는데 뒤쪽 책은 ‘흐이구, 이 책은 또 언제 읽나’ 수심은 깊어지고 세월은 가고 있다. 암튼 이 학자가 글쎄, 국가가 기밀이라는 명분 하에 숨기고 있는 거대한 지식들을 연구하고 있다. 그는 이 문제가 너무 심각하며, 이에 비하면 자신이 연구하던 과학사의 여러 문제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느꼈다. 그래서 과학사 및 과학철학 연구를 접었다. 국내 번역본의 저자 소개에 “하버드대학교 조지프 펠레그리노 과학사 및 물리학 석좌교수이자 과학사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로 적혀 있는 사람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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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글이 산으로 가고 있다. 아~ 나의 고질병 BB 허나 어쩌랴, 일단 시작했으니 요것은 마저 얘기하고 혼신의 힘을 다하여 원래 얘기로 돌아와 황급히 글을 마쳐야겠다. 오~ 이런 지경에 처할 때마다 스스로 자랑스레 느끼는 거지만, 연재 맨 처음에 칼럼 제목을 ‘과학책으로 수다떨기’라 지은 것은 정말이지 신의 한 수가 아닌가(이 틈을 타 글 제목도 원래의 [[생물학적 풍요]]에 “& [[현대사상 – 무지학이란?]]”을 덧붙였다. 샤샤샥!!!). 위키피디아에 Peter Galison을 치고 「Documentary Film」 항목으로 가보면, 한 과학사학자의 괴짜스러운 행동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심각한 내용들이 보인다(번역에는 파파고를 동원했고, 거기에 디플과 크로스체크하는 노력까지 보탰다).

“갤리슨은 여러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에 참여했다. 첫 번째 영화인 <궁극의 무기: 수소폭탄의 딜레마>는 미국 최초의 수소폭탄 개발의 이면에서 내려진 정치적, 과학적 결정에 관한 것으로, 2000년에 히스토리 채널에서 처음 방영되었다. 두 번째 작품인 <시크릿>은 하버드 영화 제작자 롭 모스와 함께 감독한 작품으로, 정부 기밀의 비용과 이득에 대한 내용이다. 2008년 선댄스 영화제에서 초연되었다. 역시 하버드 출신인 루스 링포드는 <시크릿>의 애니메이션 제작에 참여했다. 갤리슨은 2015년에 롭 모스와 함께 연출한 세 번째 다큐멘터리 영화 <봉쇄(Containment)>를 완성했다. 이 영화는 2015년 풀 프레임 다큐멘터리 영화제에서 초연되었으며 브라질, 스위스, 호주를 비롯한 전 세계 영화제에서 상영되었다. 이 다큐멘터리는 10,000년 동안 1억 갤런의 치명적인 방사성 슬러지를 가둬두려는 정부의 시도를 조사한다. 언어, 문화, 환경이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이 엄청난 시간 동안 사람들은 어떻게 미래 세대에게 경고할 수 있을까? 갤리슨의 네 번째 다큐멘터리, <블랙홀: 우리가 아는 모든 것의 끝 - 이벤트 호라이즌 망원경에 관하여>는 2021년에 넷플릭스와 Apple TV를 통해 공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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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도, 자본도, 국가도 수많은 지식을 생산하고, 무지를 생산한다. 이제는 무엇이 누구에 의해 생산되고 저지되고 왜곡되는지를 모두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게 되어버렸다. 그만큼 힘을 가진 자들의 정보 지배는 더 위험하고 치명적인 게 되었다. 그리고 이 양상은 점점 더 악화되고 있는 듯하다. 아까 말했듯 지금까지 내용은 일본의 <현대사상> 6월호 특집의 내용인데, 유명한 이와나미 출판사에서 내는 월간지 <사상> 9월호의 목차를 보니 로버트 N. 프록터의 글 「무지학 – 무지의 문화적 생산(과 그 연구)을 표현하는 개념)이 일역되어 있다. 프록터라고 하면, 지난달 칼럼 마지막인 8, 9절에서 담배 회사의 철저한 조작적 연구들에 대해 파고들어 폭로한 학자로 소개했던 무지학의 양대 창시자 중 한 명이다. 일본에선 무지학에 대한 관심이 어쨌든 일고 있는 거 같다. 아~ 여기까지 썼으면 됐어. 이젠 정말 원래의 책 이야기로 돌아가야만 해.


브루스 배게밀 , <생물학적 풍요>의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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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뭐가 그래서지?), 암튼 그래서 [[생물학적 풍요]]의 일부를 발췌해보자.

“많은 과학자들은 동성애 활동의 단일 에피소드를 처음 관찰했을 때 그 행동을 해당 종의 예외적이거나 1회성 발생으로 곧장 분류해버린다. 이와 대조적으로, 이성애의 단일 관찰 사례는 그것이 극히 드물게 발생하거나(또는 드물게 관찰되거나) 형태나 맥락에 있어서 큰 변화를 보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반복되는 행동 패턴의 대표라고 일상적으로 해석한다.”(185쪽) 그 결과 전자에 해당하는 1회성 발생 사건은 리포트나 논문, 저서 등의 작업에 대부분 포함되지 않는다. 반면 후자에 해당하는 이성애 사례는 “마운트의 빈도, 사정 횟수, 페니스 발기의 지속 시간, 찌르는 횟수, 발정 주기, 성적인 파트너의 총 수, 기타 등등을 불편할 정도로 자세히 설명한다.”(18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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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 혹은 동성간의 성적인 상호작용이 문서화 과정에 포함되는 경우도 가뭄에 콩 나듯 있긴 하다. 그때는 앞서 말했듯이 “예외적이거나 1회성 발생 사건”으로 사소하게 기록된다. 이후 더 복잡한 과정들에 의해 축소, 은폐, 사소화 등의 여러 의식적 무의식적 술수들이 동원된다. 그리하여 지식과 무지가 동시에 생산된다. 그 과정은 너무도 복잡다단하니 모두 생략하고(^^;), 그 결과 초래되는 사태로 곧장 이동하자. “예를 들어 1993년에 검은목아메리카노랑솔새에 대해 보고한 과학자는 이전에는 야생의 조류에서 수컷 동성애 쌍을 볼 수 없었다고 주장했으나 사실 그러한 쌍은 이미 반세기 전에 개미잡이새, 반달잉꼬, 개꿩, 청둥오리 그리고 그 이후 검둥고니, 스코틀랜드솔잣새, 검은부리까치, 뿔호반새 등에서 기록되어 있었다. 1985년에 사로잡힌 붉은부리갈매기의 같은 성 커플을 연구한 과학자들은 야생에서 이 종의 이러한 행동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불과 1년 전 러시아 동물학 저널에 게재된 야생 붉은부리갈매기의 수컷 동성애 쌍에 대한 설명은 몰랐었나 보다. 그리고 아델리펭귄과 훔볼트펭귄 그리고 황조롱이에서 동성 간의 짝짓기를 발견한 조사자들도 펭귄의 다른 종이나 맹금류에서 이와 비교할 만한 현상을 찾을 수 없었다고 말했지만 사실 임금펭귄, 전투펭귄, 그리폰독수리에서의 동성애 활동이 문헌에 보고된 바 있다.”(191) (이렇게 나열되는 포유류와 조류들의 기묘무쌍한 이름들을 보라. 그 자체로 즐겁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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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외계인 생물학자가 지구에 도착해 인류를 관찰하면 그는 인간이라는 종이 무성생식을 한다고 결론지을 가능성이 높다. 왜? 섹스하는 걸 한 번도 보지 못할 테니 말이다. 설마 밤에 불 끄고 캄캄한 상태에서, 그것도 온갖 단계들을 밟아가며 그걸 할지도 모르니 밤에 몰래 침실에 잠입해서 관측해봐야겠다고, 그 어떤 외계인 생물학자가 상상이나 하겠는가? 제정신 박힌 멀쩡한 생명체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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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포유류 두 마리가 마운트 자세로 삽입하면 당연히 성관계를 관찰했다고 생물학자는 기록할 것이다. 무의식중에 이것은 이성간 성관계로 포착된다. 그런데 그게 이성간 성관계인지 어떻게 알까? 실제로 이성 간 관계로 보고되었던 행위 중 적잖은 사례가 실은 동성간 성관계였다. 또 이성에게 구애하는 도중에 적잖은 동물들이 15% 정도는 동성에게 추근대기도 한다(물론 이런 행동들은 관찰한 과학자들에 의해 오래도록 무시되거나 경시되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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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책 전체를 오직 과학 텍스트에 기재된 것들만 가지고 채웠다. 한데 이런 텍스트에 실린 자료들에는 온갖 편견과 오류 등이 포함되어 있지 않겠는가! 그렇기에 저자는 방금 극소수의 사례밖에 들지 못한 온갖 난관들을 참으로 능숙하게 처리하면서 그렇게 했(을 것이)다. 이 자체가 예술이고 곡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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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내게 선사해준 최고의 선물은 다양한 성 행동과 상호 작용을 이성애를 기준으로 보지 않는, 말하지 않는, 상상하지 않는 초유의 경험이다. 비슷한 얘기지만 다양한 성관계들을 번식 차원에만 가두지 않는 저자의 시선이 대단히 통쾌했다(가령 5장 「동물의 비번식성 이성애와 대체 가능한 이성애」). 이성간의 성은 동성간, 트랜스젠더간의 성은 물론이고, 그 외 크고 작은 집단 규모로 펼쳐지는 성 등 무수한 차원에서 벌어지는 사태들의 한 종류일 뿐이다. 저자가 (다양한 성을 파노라마적으로 펼쳐놓지 않고 주로) 동성간의, 트랜스젠더간의 성애 및 상호 작용만을 제시해준 덕분에, 나는 이런 경이로운 쾌락을 경험할 수 있었다. 동시에 새로운 감수성의 획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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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쪽 책날개에 따르면 저자는, 생물지리학을 전공하고 언어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언어학과 인지과학을 강의했다. 그리고 언어학, 생물학, 젠더 및 섹슈얼리티 문제에 관한 여러 논문과 기사를 발표했다고 한다. 이런 저자가 이성애를 “절대적인 + 부동의 + 정상적인 + 유일한” 기준으로 부여잡지 않고 자연계의 성을 “있는 그대로”(?) 제시해 보인다. 이걸 하나하나 따라 밟으며 당신이 지금보다는 좀 더 기분 좋게 놀라고 가벼워지고 세상을 더 여유롭게 보게 되기를. 그게 바로 신비지. 신비라고 하면 너무 거창한가? 그럼 소박하게 이렇게 말해둘게. 살면서 우리가 겪는 체험 중에는 가슴 벅찬 장르도 있지만 좀 다른 것들도 있잖아? 천천히 흐믓하게 젖어드는 서해의 낙조 같은, 서서히 부풀어 오르는 지중해의 수면 같은 그런 장르 말이야. 그런 느릿한 신비! 거기에, 어떤 이상한 유머들이 팝콘처럼 불규칙하게 튀어나온다는 건 안 비밀!

20.

1999년에 출간된, 어찌 보면 오래전 책 아닌가 하는 근심성 불신은 언제 사라졌는지 모르게 사라졌다. 아무튼 지금은 왜 꼭 이 책이 이 새로운 시리즈의 첫 책이어야 했는지 납득이 간다. 이 책을 언제 다 읽을진 모르겠다. 1장을 먼저 읽었고, 이후부터는 목차를 보다가 맛있어 보이는 것부터 무작위로 읽고 있다. 아직 반의 반의 반의 반도 못 읽었다. 책도 두꺼우니 여기저기 집적거리면서 천천히 가보지 뭐! 아~ 그러고 보니 <현대사상>도 아직 1/8도 못 읽었네.


박성관(독립연구자, 분해의 철학 번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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