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출신 작가 로버트 호지 (Robert Hoge)는 얼굴 한복판에 종양을 갖고 태어났다. 그로 인해 그의 생애는 부모로부터 버림받는 사건으로 출발했다. 아기의 모습에 충격에 빠진 모친이 호지를 병원에 남겨두었지만, 가족들은 상의 끝에 그를 집으로 데려왔다. 여러 번의 수술로 그의 얼굴 윤곽은 점차 친숙한 형태를 갖추었고, 종양 때문에 머리 양쪽으로 벌어져 있던 두 눈도 한결 자연스런 자리를 찾았다. <Own your face>라는 제목을 단 TED 강연에서 그는 “이 고통을 통해 해 내 얼굴을 획득했다.”고 말했다.
사람의 얼굴은 태어날 때부터 주어지는 가장 개인적이고 고유한 표식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호지의 경우 한 번도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가져본 적 없다. 의학의 힘을 빌어 바로잡아야 했던 얼굴은 그가 기나긴 고통 치르고 ‘얻어낸’ 상징이다. 원래 삶이란 고충과 수수께끼에 맞서는 일의 연속일 것이다. 꼭 장애로 분류된 삶만이 그런 것도 아니다. 인터넷 공유기가 꺼진 줄 모른 채 인터넷 접속을 시도할 때 풀리지 않는 답답함처럼 — 격렬한 투쟁, 경쟁, 소송, 피 흘리는 결투가 아니더라도 — 왜인지 모를 도전을 끊임없이 받는다.
김현우의 싸움은 어디서부터였을까? 김현우, 박철호의 2인전 <상호장군 이야기>가 헝가리에서 막을 내린 참이다. 이들의 협업 프로젝트는 2023년에 발표된 <아토믹 보이>에 이어 두 번째다. 상호장군은 김현우가 만들어내 가상의 인물이고 어디에서도 그 정체가 뚜렷하게 밝혀진 바 없다. 하지만 그 이름도 용맹하게 장군이라니? 박철호는 상상할 따름이다, 다운증후군과 발달장애를 갖고 있는 자신의 동료 김현우는 어쩌면 태중에서부터 싸웠을 거라고. 독특한 창작 능력이나 남다른 예술적 원천을 차지하기 위해서 그랬을지 모른다고.
부다페스트 아트켈뢰 갈레리아에서 2024년 9월 21일부터 11월 2일까지 개최된 <상호장군 이야기 Sang-ho admiràlis törtènete>는 한국과 헝가리의 두 기획자, 장애와 비장애의 두 작가가 국경을 넘어 예술적 대화를 나누는 자리였다. 이 전시는 지난 해 독일 쿤스트하우스 카넨에서 열린 2X2 International Outsider Art Forum에서 아트켈뢰 갈레리아의 디렉터 에스테르 토트와 문화매개실천연구소 큐레이터 이지혜가 김현우와 박철호의 작품을 통해 인연을 맺으며 탄생했다. 이들은 장애 유무, 국적과 언어 차이를 넘어 서로의 세계관을 탐구하고, 그 과정에서 얻게 된 영감을 이 전시에서 펼쳤다. 이번 전시는 단순히 두 작가의 작품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두 예술적 주체가 어떻게 상호작용하며 그것을 어떻게 시각적으로 풀어내는지 보여주었다.
예술적 충돌과 화합: 상호장군 이야기
“우리는 국적을 불문하고, 장애와 상관없이, ‘경험이 적은 작가가 경험이 많은 작가에게로’ 혹은 ‘언어가 유창한 작가가 다른 방식으로 언어를 구사하는 작가에게로’ 함몰되는 상황을 어떻게 타개해야 하는지 함께 고민합니다. 다른 언어 표현을 가지고 있는 두 명의 작가가 하나의 작업을 한다는 것은 흥미롭지만 매우 까다롭고 어려운 일이기도 합니다. 두 세계가 부딪히는 지점에서 일어나는 배려나 절충을 넘어서 스스로를 죽이거나, 스스로 지켜내는 과정이 필요할 테니까요.”
(이지혜 큐레이터 기획문 중)
김현우는 <아토믹 보이: 지상 최근의 쇼> 작업을 마친 뒤 새로운 역할에 대한 갈망을 드러내며 장군 역할을 해 보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그는 삼국지 애니메이션이 자신에게는 영감의 원천이라고 박철호에게 소개하기도 했다. 오랜 기간 김현우의 작업과 성장을 지켜보았던 박철호는 서커스 로봇의 세계를 만들어 김현우에게 아토믹 보이의 역할을 부여했지만, 김현우는 실제 경험을 직접적이고 즉각적으로 여기에 투영하며 자신만의 새로운 해석을 담아냈다.
<아토믹 보이>에서 박철호의 주도로 만들어진 세계관이 김현우 특유의 해석에 의해 더욱 돋보였다면, <상호장군 이야기>에서는 김현우가 서사의 주체로서 직접 이야기를 이끌어나간다. 박철호는 ‘상호장군’으로 분장한 김현우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고, 인화된 사진 위에 즉흥적인 두 작가의 드로잉과 낙서가 겹쳐지며 독특한 질감을 만들어냈다. 장군의 이름을 묻는 질문에 김현우는 단순히 “상호장군”이라 답했는데, 어떤 의미를 담아 이 이름을 선택했는지 명확히 알기 어렵다. 하지만 '상호'라는 단어는 한국어에서 남성 이름일 뿐 아니라 ‘서로 함께’라는 의미를 가지기에 더욱 의미심장하다. 김현우는 이 이름에 대한 해석을 관객에게 맡긴 채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고, 이로써 작품에 대한 관객의 해석의 여지를 한층 더 넓혔다. 박철호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알 수 없는 세계에서 온 단순하고 직관적인 소통의 힘에 매료되었다. 그의 작업은 설명을 초월하는 힘을 중시하며, 의도적으로 단순한 소통의 가능성을 탐색한다. 이번 전시에서 두 작가는 상호 간의 충돌과 화합을 통해 서로의 세계를 새롭게 마주하며, 작품을 완성해나가는 과정 그 자체를 작품으로 승화시켰다.
사진 3, 4, 5, 6, 7. 8. 9. <상호장군 이야기> 전시장 전경, 2024년, 아트켈뢰 갈레리아
관람자가 직접 참여하는 데콜라주 워크숍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는 관객참여형 워크숍으로 언어를 뛰어넘어 ‘다른 무언가’로 대화를 이어가도록 유도한 것이다. ‘데콜라주’와 ‘낯선 사람들이 서로의 그림 완성하기’ 같은 활동이 포함된 이 워크숍은 언어를 뛰어넘는 직관적 소통의 가능성을 탐구하는 장이 되었다. 참여자들은 한 사람이 그린 선 위에 다른 사람이 계속해서 선을 이어가며 서로 간의 즉흥 대화를 형성했다. 또한 각자의 스타일로 선을 긋고 이를 이어나가는 과정에서 본인의 감각과 상대방의 감각이 얽히고 설켜 생산된 우연한 결과물을 경험했다. 이러한 시도는 비록 단순하지만 예술적 소통 실험으로 자주 활용되곤 한다. 이번 워크숍의 경우 언어 차이와 장애 여부를 초월한 ‘모호한 소통’을 실험하는 장으로 평가되었다. 김현우와 박철호는 관객들이 이러한 창의적 과정을 통해 한계와 장애를 넘어서는 경험을 하도록 유도했다.
사진 10, 11. 워크숍 진행 중
모호한 소통의 확장: 이물감의 경계를 넘어
전통적 언어 소통을 넘어서는 예술적 소통 방식은 디지털 문화에서의 소통 방식과 흥미롭게도 맞닿아 있다. 예를 들어, 우리는 AI와의 소통에서 종종 좌절을 경험하곤 한다. 간단한 명령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생성형 AI는 때때로 우리의 의도를 곡해하고, 엉뚱한 답변을 내놓는다. 이럴 때, 이러한 오류를 인내하고 다시 한번 시도하는 과정 자체가 예술적 소통의 훈련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자폐나 발달장애를 가진 사회구성원을 정당하고 합리적으로 대하는 것처럼 인공지능을 대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오늘날 우리가 비인간과의 소통에서 느끼는 혼란과 좌절 역시 소통의 확장 과정 중 하나로 이해할 수 있다. 또한 AI와의 대화에서 느끼는 답답함과 단절은 마치 언어와 신체 표현의 경계를 넘어 소통을 시도하는 예술적 경험과 유사하다. 김현우와 박철호가 전시를 통해 시도하는 '모호함을 통한 소통'은, 디지털 사회에서도 새로운 소통의 지평을 여는 데 대단히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결국 상호장군 **이야기는 예술을 활용한 소통이 단순한 시각적 아름다움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소통의 본질을 탐구하는 중요한 도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헝가리에서 열린 <상호장군 이야기> 전시가 예술의 형태를 빌어 전통적인 소통 방식을 넘어서는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한 장으로 기억되길 바란다. 김현우와 박철호는 서로 다른 언어와 표현 방식을 가진 예술가로서, 관객들에게 그들만의 독특한 세계를 보여주었다. 두 사람의 협업은 서로의 언어적·문화적 경계를 존중하면서도 이를 넘어서려는 도전이 얼마나 예술을 풍부하게 만드는지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예시가 될 것이다. 이번 전시는 단순히 작품을 감상하는 것을 넘어, 관객들로 하여금 언어의 경계를 허물고 그 바깥을 탐색하는 경험을 제공하며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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