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과학 분야의 한 학회에 세션 패널로 초대를 받았다. 여성연구자들의 연구와 삶을 다룬 책의 저자들이 초대받은 자리였는데, 여성으로서 연구를 하며 겪는 어려움을 개선하기 위해 어떤 방안을 마련해야 하는지에 대해 논하는 자리였다. 그 자리에서 자녀가 있는 한 여성연구자는 자녀를 키우면서 교수직에 임용되기 위해 얼마나 힘들게 노력했는지, 결국 비전임 연구원이 되었지만 양육과 연구를 모두 할 수 있음에 얼마나 만족하는지에 대해 얘기했다. 그러면서 더 많은 여성 연구자들이 아이를 키우는 기쁨을 느끼며 연구를 진행할 수 있도록 여성 연구자를 돕는 정책을 더 많이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성이 아이를 양육하면서 연구에도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내용에 다른 패널과 다수의 청중이 공감하는 듯 했다. 세션을 기획한 학회의 여성위원회도 연구하면서 양육을 맡는 것이 여성 연구자의 숙명이라고 전제하고 있는 듯 했는데 패널 중 유일한 남성은 여성연구자를 위한 정책적 제언에 균형을 맞추는 역할을 수행할 뿐이었다. 여성과 남성 모두 아이를 양육할텐데, 자녀를 돌보며 연구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는 이들은 왜 항상 여성들 뿐 인걸까?
메리 앤 메이슨은 캘리포니아 대학 버클리 캠퍼스의 첫 여성 대학원 학장이 되고 ‘아이는 얼마나 중요한가’ 연구과제를 시작했다. 메리 앤 메이슨을 비롯, 세 명의 학자가 미국 박사학위 소지자 조사의 통계자료와 대상자들의 심층면담을 통해 임신, 출산, 양육이 대학 내 연구자의 커리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광범한 조사를 10년에 걸쳐 진행하였고, 그 결과가 책 <아이는 얼마나 중요한가?>에 담겼다. 저자들은 대학에서의 연구자의 생애주기를 대학원생과 박사후연구원 시기, 대학 임용 준비 기간, 임용 후 정년 보장을 받기까지, 정년 보장 이후 은퇴까지의 시기로 구분하여 분석했는데, 아이가 있는 연구자는 대학원생부터 은퇴 직전까지 커리어의 매 단계에서 지속적으로 이탈하고/되고 있었다(은퇴 단계만 예외였는데 자녀가 있는 교수는 통상 은퇴를 늦게 했다). 그리고 놀랍지 않게도 이들은 대체로 여성이었다. 통계는 돌봐야 할 자녀가 있는 여성 연구자가 대학에서 커리어를 지속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었다.
분야를 막론하고 전통 있는 학문들이 중산층 백인 남성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왔음은 익히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러한 역사는 지식의 내용과 관점을 특정 집단의 시선에 고정되게 하는 동시에 지식 추구의 방식 또한 그들의 삶의 형태를 따르게 만들었다. 가사노동과 자녀양육으로부터 자유로웠던 그들은 그만큼 연구에 몰두할 수 있었다. 반면 시대가 바뀌어 학계로 진출한 여성들은 여전히 가정 내 여성의 의무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이러한 상황은 정년트랙의 여성 교수들이 남성에 비해 자녀가 현격히 적은 통계가 보여준다. 조사에 의하면 일부 여성은 정년트랙을 포기하고 비정년트랙의 길을 택해서 아이를 양육하고 아이가 어느 정도 크면 다시 정년트랙으로 들어가기도 했다. 여성연구자들은 아이를 양육하면서 연구를 지속하기 위해 나름의 방식으로 애쓰고 있었고, 때로는 자신의 연구 커리어를 지속하기 위해 가정 혹은 자녀를 포기하기도 했다(여성들이 커리어를 유지하기 위해 가정을 이루는 방식을 어떻게 변화시켜왔는지에 대해서는 클라우디아 골딘의 『커리어 그리고 가정』을 참고하라). 성별에 따른 연구자의 커리어경로에 대한 통계에서 남성과 달리 유자녀 여성은 명백하게 커리어를 위협받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쯤 되면 유자녀 여성이 양육을 하면서 동시에 연구를 지속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급박한 정책이 필요해 보인다. 하지만 그것이 다일까? 저자들은 연구자의 자녀와 커리어의 상관관계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 교수와 유사하게 오랜 기간 훈련을 요구 받는 의사나 변호사와 같은 다른 전문직종과 비교를 시도한다(나는 이 연구의 탁월함이 바로 이 지점에 있다고 생각한다). 젊은 시절 집중적인 훈련을 필요로 하는 의사와 변호사는 교수와 유사한 출산율 그래프를 보여준다. 미국 평균 출산율이 20대에 가장 높고 나이가 증가하면서 점차 낮아지는 반면 이들 직종은 전문직으로서의 훈련이 끝난 후인 30대에 가장 높은 출산율을 보인다. 여기에서 다른 전문직이 30대 초반에 높은 출산율을 보이는 반면 교수직은 30대 후반이 되어서야(여성의 경우 가임기의 끝자락에 놓이게 될) 높은 출산율을 보이며 그마저도 다른 전문직에 한참 못 미치는 수치였다. 게다가 또 다른 조사 결과 교수들은 성별을 불문하고 더 많은 자녀를 원했지만 커리어를 이어가기 위해서 자녀를 더 갖지 못하고 있었다. 즉, 대학 교수라는 커리어 자체가 자녀의 출산과 양육에 친화적이지 않은 직종인 것이다.
대학원생에서 교수직 은퇴에 이르기까지 대학의 연구직은 일반적인 업무 외에도 연구결과를 논문으로 출판해야 한다. 논문은 연구자의 능력을 평가하는 주요한 요소로 작동하며 임용에서 정년 보장, 승진에 이르기까지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 또한 연구자의 또 다른 능력으로 여겨지는 연구비를 획득하는 데에도 논문은 중요하다. 논문을 쓰고 학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연구자는 연구에 몰두해야 한다. 게다가 실험과학자라면 사람을 고려하지 않는 실험의 시계에 맞춘 삶을 살아야 한다. 연구는 종종 연구자의 섬세한 손길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연구자는 내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어야 한다. 연구 활동의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연구중심대학의 여성은 물론이고 남성연구자도 자녀와 연구 중 선택하라고 내몰리고 있었던 것이다. 다만 여성은 양육을 함께 할 것을, 남성은 양육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 기대되는 차이가 있을 뿐이었다.
대학의 이러한 문화는 남성에게도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심층면담에서 남성 연구자들은 자녀와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하거나 실제로 양육을 담당하고 있음에도(한부모 가정의 아빠인 경우에도!) 대학에서는 그를 주양육자로 고려하지 않고, 자녀를 양육해줄 다른 누군가가 있을 것이라 쉽게 가정한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내가 주변의 교수들에게 자녀양육과 연구를 어떻게 병행했는지를 물었을 때 대부분은 독박육아를 해준 아내에게 미안해했다. 육아가 여성의 일로 치부되고 있는 동안 여성들은 연구와 육아를 모두 완벽하게 해내지 못해 괴로워했고, 남성들은 육아에 참여하지 못해 가족들에게 미안해 하고 있다.
책을 읽는 내내 10년도 전의 미국 대학 연구자들의 사정이 마치 내 이야기처럼 공감이 되었다. 하지만 유사점이 많은 만큼 차이점도 보였다. 책이 출간된 2013년 미국의 대학들은 이미 가족친화정책을 시행하고 있었으나 현재 우리나라 대학은 유급육아휴직의 보장, 직장 내 어린이집 설치와 같이 고용노동부가 시행중인 남녀고용평등법의 범위 내의 제도가 운영될 뿐이다. 대학이라는 특수한 환경을 고려하지 않은 이 시행령은 연구직에는 적용하기 어려운 항목을 포함하며, 그나마도 노동자로 분류되지 않는 학생이나 비전임/계약직 연구원은 실질적으로 사용이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 이공계 특성화 대학의 설문조사 결과, 자녀를 양육하는 연구자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저녁이나 주말에 실험을 해야 할 때 아이를 돌봐줄 서비스였다(포스텍 페미니즘, 2020). 미국의 대학에서는 지역의 긴급 돌봄 기관에 연계하는 서비스를, 독일의 막스플랑크 연구소에서는 아이와 함께 연구소에 출근할 수 있도록 하는 부모-아이 오피스를 운영하고 있으나 한국에서는 부모 개인의 역량으로 이를 해결해야 하기에 연구자의 아이를 봐줄 조부모의 존재는 연구자에게 또 다른 스펙으로 작용하고 있다. 아이가 커갈수록 연구자로서의 커리어에 안정을 찾는 미국과 달리 한국 부모들은 자녀가 초등학교 입학할 때에 다시 한 번 위험을 맞닥뜨린다(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 제공하던 종일 보육은 초등학교 입학과 함께 종료된다).
나의 경우 독립연구자인 나와 교수인 남편 모두 적극적으로 육아에 참여하고 있다. 하지만 자녀 양육을 위해 최적으로 여겨지곤 하는 나의 독립연구는 감기 등으로 아이가 어린이집에 등원하지 못할 때마다 멈추곤 한다. 육아하는 아빠를 위한 강의나 학과 업무 경감 등의 지원제도가 전무한 상황에서 강의와 회의 등으로 낮 시간을 보낸 남편은 저녁 시간의 일부를 아이와 함께 보낸 후 연구를 하고 논문을 쓰기 위해 밤마다 재출근을 한다. 남편이 재출근하는 날에 나는 아이를 재우고 나서야 잠깐의 시간을 추가로 얻는다. 우리 모두 연구와 육아를 병행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남편은 선배 교수로부터 육아에 참여하지 말고 연구에 몰두할 것을 종용받으며, 나는 우리의 육아분담으로 인해 남편이 정년 심사에서 탈락하게 될까봐 걱정을 한다. 주변의 연구직 엄마들도 사정은 비슷했다. 우리는 연구에도, 자녀의 돌봄에도 온전히 몰두하지 못하는 자신에게 매일 자괴감을 느끼며 “대체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이러고 있을까”라는 말을 종종 한다.
저자들이 강조한 것처럼 대학의 가족친화제도 확립과 시행 못지않게 대학 문화를 변화시켜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점점 더 빠른 속도로 경쟁이 가속화되어 지구환경과 사회를 고려하지 않고 달려나가는 과학의 속도를 늦춰야 한다는 선언은 비단 지식 생산의 방식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Stenger, 2017). 연구에 종사하는 이들을 위해서도 현재의 연구 방식은 변화되어야 한다. 대학을 매력적인 곳으로 여기는 연구자들의 수가 줄고 대학의 위기가 지속적으로 언급되고 있는 지금이 바로 대학이 가장 잘 하는 것을 당장 시작할 때가 아닐까. 대학 구성원들이 자신의 삶을 지속하면서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방안을 찾기 위한 연구를 당장 시작해야 한다. 이 책 <아이는 얼마나 중요한가>는 그 시작점을 제시해 줄 것이다.
참고문헌
클라우디아 골딘 저, 김승진 역 (2021) 『커리어 그리고 가정: 평등을 향한 여성들의 기나긴 여정』생각의 힘
포스텍 페미니즘(POFE) (2020) 「2020년 하반기 교내 수유실 및 놀이방 수요조사 보고서: 더 나은 연구중심 대학을 위하여」
Stenger, Isabelle, (trans. by Stephen Muecke) (2017) Another Science is Possible: Manifesto for Slow Science. Po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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