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 전쯤 『x의 존재론을 되묻다』 서평을 의뢰받았다. 박동환의 철학에 대해, 특히 『x의 존재론』을 둘러싸고 논하는 책이라고 했다. 박동환 교수라...... 몇 년전 스쳐가며 이름을 들었던 기억이 있다. 언제 기회되면 한 두 권 읽어보고 싶다는 정도였는데, 이렇게 마주치게 되니 반가운 마음이었다. 서평을 쓰기로 하고 먼저 『x의 존재론』(박동환 지음)을 읽기 시작했다. 진중하고 넓고 집요했지만 난해하거나 사람을 힘들게 하는 철학자는 아니었다. 우주 물리학이나 생물학 분야도 자주 다루어 읽는 재미가 더했다. 특정한 전문 지식을 파고든다기보다는 자신의 문제 의식에 부합하는 지점들을 건드리는 방식이라 어렵지 않았다. 덮어놓고 과학이나 첨단 기술을 배타하는 그런 인문서가 아니어서 도리어 신선하고 좋았다.
1. 『x의 존재론』
박동환이 펼치는 철학은 쉽게 말하자면 인생론인데, 조금 더 좁혀 말하자면 가장 근본적인 차원에서 전개되는 인생론이다. 하지만 그가 사람만을 대상으로 사유하는 건 아니니 존재론이라고 해야 할까? 결국 그가 구사하는 방법까지 포함해 어렵게 말하자면 형이상학적 존재론쯤 되겠다.
2. 나의 옛날 이야기(feat. 조덕배)
나는 고교 1학년 무덥던 여름 어느날부터 심한 고민에 빠져들었다. 내가 어떻게 해서 있게 되었는지(나, 왜 태어난 거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건지, 또 결국 삶이 끝난 다음에는 어떻게 되는 건지(나, 어디로 가는 거임?) 등등. 그때는 아는 것도 읽은 것도 하나 없어서 그저 ‘삶의 의미’가 뭐지, 라는 극히 단순한 질문밖에 반복하지 못했다. 참 옛날 얘기다. 시간이 좀 지난 뒤로는 이게 밑도 끝도 없는 동네 얘기인 걸 알았고, 그래서 가급적이면 빠져들지 않게 주의하며 살았다. 그러면서도 나름 가치를 부여했기 때문에 아예 멀어지진 않는 그런 관계를 유지해왔다.
3. 근자에 나는
요 몇 년간, 최근 유행하는 새 철학들을 좀 읽어봤다. 사변적 실재론, 신실재론, 사변적 유물론, 객체지향존재론, 신유물론 등에서부터 인류학의 존재론적 전회에 이르기까지. 한데 좀 신기하기도 해라, 이 다양한 색조의 학자들이 대부분 형이상학과 존재론을 가장 중시하거나 최소한 자기 철학의 필수 구성 요소로 겸비하고 있었다. 지루한 철학 혹은 강단 철학의 대명사로 여겨졌던 이 두 분야에 새로운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이다. 새 부대에 담겨서 그런지 형이상학과 존재론이 그리 못할 짓만은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과거 철학계처럼 너무 그런 것만 과도하게 중시한다면 완전 시대착오겠지만, 역으로 이런 쪽 탐구를 아예 무시하거나 망각하는 것 또한 부자연스럽지 않은가 생각하게 되었다.
4. 우리말로 철학하는 기쁨
박동환의 책은 이런 형이상학과 존재론을 우리말로 생생하게 전개한다. 근원적인 문제를 일상 언어로 파고들기 때문에 이야기가 겉돌거나 허세에 빠지는 일이 없다. 우리말로 충분히 대화가 이뤄진다는 기쁨과 편안함이 이런 것이었구나! 게다가 다행인 것은, 그가 ‘우리’ 철학에 집착하지도 않고 그런 철학을 기필코 만들자면서 왕부담을 안기지도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말을 풍부하게 구사하니 당연하게도 섬세하고 깊으며 강력하다. 친근감을 더할 뿐 얄팍하거나 피상적이지도 않다. 철학책을 끝까지 숙독할 수 있었던 데에는 이런 미덕도 크게 작용했다.
5. 『x의 존재론을 되묻다』
이런 x의 존재론을 여러 학자들이 되물었고 그에 대해 일일이 박동환이 답한 것이 『x의 존재론을 되묻다』이다. 독서 초반에는 『x의 존재론』에서 이해가 안 되었던 문제들을 정리, 요약해주고 때로는 비판도 가하니 상당히 유용했다. 문제는 독서 속도가 점점, 빨라지긴커녕 도리어, 느려졌다는 거다. 가만히 살펴보니 질문자들이 하라는 질문에만 그치지 않는 게 문제(?)였다. 그들은 자기 세계를 펼쳐보임으로써 박동환의 철학 세계가 얼마나 부실하거나 초라한 것인지를 입증하려고 최선을 다했다. 그들은 혹 몇 덩어리를 떼어주긴 했지만 훨씬 더 많은 혹덩어리를 붙여준 셈이다. 질문자들이 붙여준 혹의 분야는 하도 다양하여 철학(최세만, 김상환, 유헌식), 인류학(차은정), 골 때리는 문체의 서양철학사(김귀룡), 예술철학 혹은 미학(조성우), 원효 사상과의 비교(이상수) 등까지 그야말로 덕지덕지였다. 이에 대해 박동환이 일일이 논평하고 반박한다. 이 전투는 각각을 상세히 리뷰할만 한데, 여기서는 딱 두 건의 재미진 측면만 짚자.
6. 박소정과 김동규의 사례
박소정의 「한국철학과 ㅂㄷ철학」(박동환은 자기를 ㅂㄷ라 칭하기도 한다). 박소정은 ㅂㄷ ‘선생님’과 이래저래 엮였던 과거를 회상하며 이 격전의 기록 와중에 따스한 바람을 불어넣는다. 그래, 이런 글도 한 편쯤은 있어야지, 하며 나의 숨통이 트이는가 싶자마자 글은 ㅂㄷ가 논리에만 주목한 나머지 한국 철학의 실감을 놓쳐버렸다고 단호하게 비판한다. 지나는 김에 (이 책에 역시나 글을 실은) 김상환 또한 다를 바 없다며 비판을 가한다. 이 설득력있고 깊이 있는 비판에 대해 ㅂㄷ는 박소정의 충심을 충분히 안다면서도 그런 식의 접근은 지역학일 뿐이며, 자신의 혁명적인 철학과는 전혀 무관하다고 퇴짜를 놓는다.
김동규의 「물음의 책임」은 ㅂㄷ가 시종일관 물음에 충실했지만 물음의 책임을 결정적으로 빠뜨렸다고 비판한다. 그 결과 ㅂㄷ가 내세울 수 있었던 건 “개체성의 자연보호와 독선 금지”였고, 그것은 “재기발랄하지도 심오하지도 매력적이지도 않은 문구”라고, 거의 욕을 한다. 다른 모든 질문자들의 글과 마찬가지로 나는 이번에도 크게 공감하며 박동환의 답변을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김동규의 자연관이 너무도 협소하여 “고사 직전”에 있으며, 김동규는 사랑을 강조하지만 “그는 ‘자연’으로부터 ‘생명’을 그리고 다시 ‘사랑’을 이끌어 내보여주는 현대 과학자들의 연구에 전혀 무관심하거나 무지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김동규에 대한 답변으로서도, 책으로서도 모두) 마지막을 이렇게 맺는다. “대화에 어떤 변화도 발전도 없이 긴 반복을 했을 뿐이다. 마지막 깨달음의 한 마디를 남기고 싶다. ‘사람은 각기 그가 이해할 수 있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20210205)” 이상한 말이지만 나는 책을 덮으며 냉엄한 감동을 받았다.
7. 현역을 씹자
두 권의 책은 박동환이 누구인지, 그의 제자와 후배 혹은 동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유감없이 전시한다. 특히 『x의 존재론을 되묻다』는 『x의 존재론』 못지않게 놀라웠다. 상대를 최강의 적으로 맞받아침으로써 자신이 상대를 얼마나 존경하는지, 그리고 자신을 얼마나 존중하는지를 치열하게 표현했다. 한마디 한마디가 돌직구였는데, 내가 ㅂㄷ 철학을 이해하는 데에도 큰 도움을 주었다. 이런 스타일의 책, 그것도 우리 책은 처음이었다(최근 이와 유사한 경험을 했다. 나는 그동안, 일본에서 만들고 우리나라에선 그 번역본이 출간되는 과학 월간지 <뉴턴>만 알고 이게 최곤줄 알았다. 지지난달 월간지 <과학 동아> 최근호들을 보며 놀랐다. 정성껏+훌륭하게 만들어져왔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나라의 철학자들은 세계 학계에서 거의 논의되지 않으며 한국에서도 생전에는 논의되는 일이 없다. 있다면 회갑기념논총 같은 형식의 것인데, 그 잠시를 지나면 또 이내 사라진다. 그런 면에서 『x의 존재론을 되묻다』는 독보적이다.
ㅂㄷ는 나이가 꽤 많긴 하지만 지금도 왕성하게 활동하는 현역이다. 다른 학자들의 최신 저작들과 논문들을 계속 따라 읽으며 자신의 이전 주장들을 갱신해가고 있다. 3표철학을 x의 존재론으로 쇄신한 결과 다른 학자들이 그의 속도를 못 따라가는 대목이 『... 되묻다』 곳곳에서 발견된다. 현역을 둘러싸고 치고박는 게 얼마나 생산적인지를 알려면 이 책을 보라. 그리고 따라해보라. “우리도 이들처럼!”
8. 참고삼아 덧붙이는 건데...
나는 올 11월 중순부터 소위 요즘 사상가, 철학자들을 연속으로 다루는 강연을 시작한다. 그 출발은 인류학자들로 매릴린 스트래선, 에두아르도 콘, 비베우르스 지 카스트루 등이다(사상가와 철학자라며 웬 인류학자들?). 이후 그레엄 하먼이나 가브리엘 마르쿠스 등으로 이어갈 터인데 가령 이진경 등도 포함될 예정이다. 그리고 아마도 오정희나 박상륭(이번엔 또 웬 소설가들), 그외 어떤 미술가나 과학자가 포함될지도 모르겠다.
이건 굳이 K-철학이나 우리 것의 문제를 운운하기 이전에, 자연스럽게 우리가 읽고 고민하고 욕하고 크게 기대는 사람들이라면 국적이든 성별이든 외모든 따지지 말고 해가자는 생각이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그들’의 나이. 그레엄 하먼(1968년생), 캉텡 메이야수(1967년생), 심지어 가브리엘(1980년생), 내가 자주 참조하며 배우고 때로 소개하기도 하는 고쿠분 고이치로(1974년생), 지바 마사야(1978년생), 기시 마사히코(1987년생). 이들에 대해 번역도 하고 강의 및 논의도 하듯이 우리나라의 학자들에 대해서도 그렇게 해보자.
“우리도 그들처럼(feat. 박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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