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과 가족을 찾아서
농촌 총각 박춘섭(32)은 결혼하고 싶지만 마땅한 대상이 없다. 마을에 딱 하나 남은 처자는 외모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싫다. 그러던 어느 날 고향을 벗어날 기회가 생긴다. 상경한 친구 김홍식(32)이 도시에서 일자리와 여자를 주선한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춘섭은 이력서, 선물용으로 쓸 토종꿀, 그리고 홍식에게 당부 받은 돈 오백만 원을 마련해 서울로 떠난다. 그러나 도착 첫날 홍식에게 그 돈을 몽땅 떼이고 빈털터리가 된 뒤에야 애초부터 ‘취업 사기’에 놀아났음을 깨닫는다. 달아난 홍식을 찾아 나선 춘섭은 월곡동으로 흘러든다.
이것은 1994년 MBC 방영 드라마 <서울의 달>의 앞부분이다.
춘섭(최민식 분)에게서 도망친 홍식(한석규 분)은 저렴한 셋방을 물색하던 중이다. 홍식에게 방을 추천한 상국 아버지에 의해 “미아리 방향으로 월곡(月谷)”이라고 소개된 이 동네의 이름은 드라마 제목하고 어울린다. (그러나 실제 촬영지는 한강이 보이는 옥수동으로 추정되는 점에서 이는 허구의 공간일지도 모른다.) 이곳에서 홍식을 찾아낸 춘섭은 돈을 전부 받아낼 때까지 홍식의 방에서 기거하며 고향에 내려가지 않겠다고 서울살이를 선포한다. 이 둘은 이렇게 동거를 하게 된다. 퇴역한 직업군인 장대변의 집에서다.
이곳은 다양한 주거불안계급을 품는다. 상국이네는 작은 단칸방에 내외와 노모, 그리고 어린 상국이까지 네 식구가 함께 살고, 그 건넌방에는 살림이 궁핍해도 옷차림은 화려한 춤 선생 박만석이, 만석의 옆방에는 홍식과 춘섭이 세 들어 산다. 그러나 집주인 부부도 그렇게 넉넉한 처지는 아닌 듯하다. 딸 옥희가 이혼 위자료를 밑천으로 장사를 시작했다가 폐업한 뒤 대변의 퇴역연금은 옥희가 새로 커피 전문점을 차리는 데에 고스란히 들어간 터라, 아파트에 입주한다는 이웃이 부럽기만 하다.
골목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맞은편에는 재야운동가 출신 송씨 일가가 구멍가게를 운영하고, 구로동까지 세 번을 환승해서 통근하는 중소기업 경리사원 차영숙(채시라 분)의 모녀가 살고 있다. 이들의 삶 역시 달리 기댈 곳 없는 현실에서 도피했거나 빠듯한 형편 때문에 직주근접을 포기했다는 점에서 불안정성을 띠고 있다. 사람들이 항상 떠나갈 채비를 하는 곳 — 월곡은 아늑하지만 친숙해질 수만은 없는 곳이다.
직업과 가족 사이에서
드라마의 줄거리를 떠올린 공간은 서울을 빠져나가는 열차 안이었다. 그리곤 옛날 생각 — 우리 부모는 맞벌이였는데 신혼이었을 때 아버지의 직장은 서울에, 어머니의 직장은 C 도시에 있었다. 교직에 있던 어머니는 타도(他道) 전출이 쉽지 않았던 데다가 오며 가며 노부모를 보살펴야 한다는 의무감 때문에 신혼부부의 직업과 생활은 한 지역 안으로 통합되지 못했다. 나를 임신한 우리 엄마는 새벽에 집에서 출발해 지하철과 기차를 갈아타며 편도 두 시간 넘게 이동했다. 만삭이 되고 나서는 학교와 멀지 않은 친정에서 통근하고 주말에만 서울 집으로 돌아와 가사를 다독여 놓고는 월요일 새벽에 C 도시로 돌아가기를 반복했다. 그러니까 나는 뱃속에서부터 열차로 매일 또는 매주 지역과 지역을 오가는 ‘초지역적’ 인구였던 셈이다.
이후 아버지의 발령으로 C 도시로 이사하면서 직주분리가 해소되기도 했으나, 몇 차례 본사와 지사 근무를 반복하는 동안 아버지 또한 여러 차례 두 지역살이를 통해 회사 생활을 이어갔다. 물질적 안정과 자아실현을 모두 추구했던 내 부모에게는 맞벌이가 꼭 필요했다. 하지만 이것은 여자 쪽에서 ‘충분’ 이상을 감당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엄마에게는 직장이 있는 C 도시에서 우리들을 데리고 일과 양육을 병행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렇게 해를 거듭하는 동안 우리 집(‘본가’)은 그곳에 뿌리내렸다. 그리고 내가 서울로 대학을 진학하면서 아버지가 본사로 돌아오시자 우리 가족은 다시 서울과 C 도시의 사이를 왕복하게 되었다. 익숙하지만 고단한 거주분열. 고단하나마 잦은 이동을 감내할 법한 아슬아슬한 거리 안에서 가족은 자주 찢어졌다가 뭉쳤다.
우리들의 돌아갈 곳. 나는 추석 명절을 지내기 위해 은퇴한 부모님이 살고 계시는 C 도시로 향하고 있었다.
돌아갈 곳을 찾아서
극 중 춘섭을 테마로 흐르는 곡은 “사람들 모두 집을 찾아서 (…)”라는 노랫말로 시작된다. 사람들의 집은 어디일까. 서울내기들과 밥상을 나누며 춘섭은 우리 농산물의 설 자리와 부강한 농촌의 중요성을 부르짖는다. 이것은 서울에서 일자리를 찾고 가족을 꾸릴 꿈에 부풀었지만 그 꿈이 좌절되더라도 귀향이라는 대안적 삶이 담보된 그의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일말의 안도감은 그가 위기에 내몰리지 않도록, 나쁜 유혹에 흔들리지 않도록 붙들어 주었을 것이다. 춘섭이 결국 서울에서 결혼하고 아내와 식당을 차리는 사이, 홍식은 사업으로만 여겼던 결혼 생활에서 참패하고 사업 수단이었던 ‘카바레 제비족’ 생활마저 끊어질 위기에 놓인다. 그러나 머슴살이를 하던 가족에 대한 콤플렉스로 자신의 근원과 결별한 홍식에게 돌아갈 곳이란 없다. 방황하는 홍식에게 새로운 시작을 권하는 것은 춘섭이다.
“나는 모든 걸 잃어도 돌아갈 곳이 있다. 내려가서 농사 지으면 돼. 하지만 넌? 없잖냐. 여기 있어라. 다 청산하고, 여기서 식당 일하면서 나랑 같이 살자.”
한편, 열심히 돈을 모은 상국이네는 얼마 뒤면 아파트로 이사하게 되었다. 이 때문에 주인집의 시샘을 산 상국네 노파가 마당에 고추를 말리려다가 소동이 벌어진다. 상국 아빠가 공사장 폐자재를 가져다 만든 평상을 그동안 사이좋게 공유해 왔는데 돌연 한쪽에서 독점권을 주장한 것이다. 이에 상국 할멈은 “집이 당신 것이라고 평상도, 햇살도 다 집 주인의 것이냐”고 항의한다. 이 장면은 자본주의 부동산 현실을 우회적으로 가리킨다. 우리나라는 법률에 따라 토지소유권에 개발권이 부착되어 있다. 땅의 주인은 자연히 그 땅 위에 들어선 건축물의 주인이다. 그렇다고 햇살마저 땅 주인의 것일 리는 없다. 그러나 법리적으로는 그 햇살마저 논란을 일으킬 수 있다. 노파의 외침은 도시에서 목도하는 소외와 공유의 문제를 소환한다. 여전히 생존전략의 시급성을 시사한다.
제비처럼 이동하며
투정에 불과할지라도 솔직히 인정하겠다. 나는 지역과 지역을 오가는 데에 지쳐버렸다. 사회인이 된 이후 직업상의 이유로 국내외를 다니며 수없이 출장 가방을 꾸렸다. 그 중 2년 동안은 지방과 서울에서 두 지역살이를 했다. 부모 세대와 나의 세대에서 유독 급증한 이러한 거주 양식은 교통, 기술, 직업 형태, 사회상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현대적 생존전략의 상당 부분은 이동성(mobility)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 더 이상 진정한 의미에서의 영구한 ‘이주’란 존재하지 많으며 다양한 형태의 지속적 ‘이동’만이 우리의 삶을 굴러가게 하지 않을까.
대도시에서의 결혼과 직장을 찾아 나선 이도향촌, 가족과 일터를 지키기 위해 지역의 경계를 초월한 두 지역살이, 왕복 세 시간씩 대중교통에만 묶인 서울살이가 모두 ‘돌아갈 곳’을 만들기 위한 몸부림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서울의 달>의 주제가가 아님에도 이 드라마를 통해 유명해진 노래가 있다. 가수 김혜연의 <서울 대전 대구 부산>이라는 트로트 곡이다. ‘제비’ 홍식에게 '브루스'를 가르치는 호달이 “서울 대전 대구 부산 찍고 터닝”이라고 구령을 붙이기 때문이다. 이 독창적인 구령은 단연 히트를 쳤다. 서울, 대전, 대구, 부산을 마다치 않고 ‘님’을 찾는 노래 속 목소리가 좌우전후 '브루스' 스텝을 밟는 인물들과 운명적으로 중첩된다.
지금 우리는? 과거의 이도향촌을 이도오촌, 삼도사촌으로 변형하고 확장하면서 멈추지 않고 이동해 왔다. 이다음에 나와 내 가족이 돌아갈 (re-turn) 곳을 만들기 위해서 두 지역 생활자로, n잡러로, 코스모폴리탄으로, 디지털 노마딕으로, 원격 근무자로 어디서든 살고 일하며 분주히 찍고, 턴할 준비가 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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