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대문학 연구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을 때, 나를 가장 억누르던 것은 역설적이게도 외국(어)에 대한 콤플렉스였다. 대학원 시절 내가 접했던 이론 가운데 하나는 이른바 문학사의 단절론 혹은 이식론이었다. 이 주장에 따르면 한국 고전문학사의 전통은 근대로 이어지지 않는다. 판소리계 소설이나 야담 등의 조선 후기 문학의 흐름은 근대로 접어들면서 그 수명을 다하게 되고, 서구문학 혹은 일본문학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심정적으로는 거부감이 없지 않았지만, 반론을 펼칠 능력이 없어 일단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대학원 시절까지 내가 접할 수 있었던 대부분의 저술에서는 한국 근대소설의 기점을 개화기의 ‘신소설’로 설정했다. 신소설의 기원 혹은 성립 과정은 주로 일본의 근대 소설사를 차용해 설명했다. 신소설이라는 용어 자체가 우리의 것이 아니고, 일본에서 가져온 문학사적 용어라는 사실도 이들 저술을 통해 접하게 되었다.
일본 근대문학에 대한 심층적 이해 없이 한국 근대문학을 연구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그것은 단순한 고민이 아니라 일종의 절망에 가까운 것이었다. 나의 일본어 해독 능력으로는 앞선 연구 세대의 그것을 결코 따라갈 수 없음을 잘 알았기 때문이다. 앞선 연구 세대는 대부분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일본어로 교양 교육을 받았다. 내가 아무리 노력을 한들 이들 세대의 언어 감각을 뛰어넘어 일본의 근대 자료를 심도 있게 이해하고 해석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 생각했다.
내가 일본인 연구자를 처음 만난 것은 1990년대 중반 무렵 미국 하버드대학 옌칭연구소에 방문학자로 체류할 때였다. 일본인 연구자를 만난 지 여러 달 후, 나는 내심 벼르던 질문을 그에게 던졌다. 한국과 일본의 ‘신소설(新小說)’에 대해 비교해 보자는 것이 내 제안이었다. 우선 일본의 신소설에 대해 설명해 달라는 요청에 대해, 그는 당시 일본의 베스트셀러 작가들이었던 무라카미 하루키와 요시모토 바나나의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에게, 아니 그것 말고 일본의 개화기 신소설에 대해 말해달라고 다시 요청했다. 그는 한동안 난처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결국 그날 우리가 함께 알아낸 것은 한국과 일본에서 사용하는 신소설이라는 용어의 의미가 전혀 다르다는 것이었다. 일본에서는 신소설이라는 용어를 근대문학사 초기 즉 개화기 소설이라는 문학사적 의미로는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일본에서 신소설은 시대와 관련 없이 최근에 발간된 새로운 소설이라는 보통명사일 뿐이었다.
한국 근대문학사에 등장하는 신소설이라는 용어가 일본 문학사에서 가져온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대한 깨달음은 그 자체로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작은 깨달음은 한국 근대소설사를 바라보는 내 시각을 완전히 새롭게 바꾸는 계기가 되었고, 일본의 근대 자료가 아니라 한국의 근대 자료를 보는 일이 중요하다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일본어에 대한 중압감에서도 어느 정도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오늘날 한국문학사에서 신소설은 개화기 혹은 근대계몽기라 일컫는 특정한 시기의 특정한 문학 양식을 일컫는 고유명사로 사용된다. 그런데, 근대계몽기 당시에는 한국에서도 신소설은 그러한 고유한 의미를 지닌 용어가 아니었다. 신소설은 근대계몽기에 사용되던 ‘신’학문이나 ‘신’여성, ‘신’화폐 등과 조어법에서 별 차이가 없는 용어이다. 근대 초기에 신소설은 새로 쓴 소설, 혹은 새로 인쇄한 소설 등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지금은 근대적 장편소설의 효시라 일컫는 이광수의 신문 연재소설 「무정」도 당시에는 신소설이라고 광고했다. 이는 이광수가 집필한 새로운 소설이라는 의미이다. 일부 작품의 경우 앞표지에는 신소설, 판권란에는 고전소설이라 표기된 경우도 있다. 이는 고전소설 작품을 새로 인쇄해 발행한다는 의미이다. 일제 식민지시기에 간행된 일부 외국어 번역소설에도 신소설이라는 표기가 되어있는데, 이 역시 동일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는 현상이다. 한때 학계에서는 신소설이라는 용어를 누가 어디에서 처음 사용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논의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근대 초기 이 용어는 보통명사였으므로 누가 처음 사용했는지를 밝히는 것이 별로 의미가 없다. 그보다는 우리문학사에서 보통명사이던 신소설이 지금과 같은 문학사적 의미를 지닌 고유명사로 바뀌게 된 것은 언제부터일까라는 문제를 검증하는 것이 필요하다.
1916년 12월 29일자 매일신보의 「무정」 연재 광고. 신년의 '신소설'이라는 문구를 사용하고 있다.
우리문학사에서 신소설이라는 용어가 특정한 의미를 지닌 고유명사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김태준의 『조선소설사』(청진서관, 1933)에서부터이다. 이 책은 우리나라 최초의 독립된 소설사 저술이다. 여기서 신소설은 조선조의 구소설 이후 1919년 3.1운동 이전까지의 소설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된다. 김태준은 몇 년 후 『조선소설사』 증보판을 내면서 신소설이라는 용어를 더욱 명확한 문학사적 의미를 지닌 용어로 사용한다. 그는 “이야기책이라 할 수 있는 구소설에서 신소설이 나왔다. 신소설은 이광수 · 김동인 · 염상섭 등의 현대적 소설이 나오기 이전까지의 소설이다. 이야기책에서 바로 오늘날의 현대소설이 나온 것이 아니라 신소설이라는 과도기 소설을 거친 것이다.”라고 설명한다. 김태준은 신소설이 구소설과 현대소설 사이에서 교량적 역할을 한 소설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구소설 -> 신소설 -> 현대소설’이라는 구체화된 문학사적 구도를 완성해 제시한다. 김태준은 신소설 운동의 선구자로 이인직을 거론하고 그의 신소설 작품이 갖는 특징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첫째, 갑오경장 당시의 조선사회를 여실히 보여준다. 둘째, 그의 붓은 어디까지나 사실적이다. 셋째, 그의 붓끝에는 뜨거운 열정과 엄숙한 비판이 있고 새로운 세상을 그려낸다. 넷째, 진정한 의미의 소설과 언문일치의 새로운 문체를 보여준다. 신소설의 특징은 결론적으로 다음과 같다. “이야기의 취미를 좀 더 풍부하게 하며 언문일치의 문체로써 어떤 한 개의 사건을 취급하여 그 사건의 추이를 따라 순간순간의 행동과 대화까지 그대로 쓰는 것”. 김태준이 정리한 신소설의 개념 및 문학사적 의미에 관한 논의는 이후 임화 등 여러 문학사 연구자들에게 이어진다. 식민지시기뿐만 아니라 해방 이후를 거쳐 오늘날에 이르기까지도 그 큰 줄기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신소설이라는 용어는 한동안 전혀 다른 두 가지 개념으로 사용되어 왔다, 하나는 근대계몽기 당시에 사용되던 것으로 주로 새로 쓴 소설 혹은 새로 인쇄한 소설, 새로 번역한 소설 등의 의미를 지닌다. 다른 하나는 김태준과 임화 등 문학사 집필자들을 통해 새롭게 정의된 개념어로 20세기 초반이라는 특정한 시기에 발표된 특정한 문학 작품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한자 문화권인 한국과 일본 중국 등에는 신소설이라는 용어가 모두 존재한다. 일본이나 중국에서 이 용어는 전 시대에 비해 새롭다는 상대적 의미 혹은 잡지의 제목 등으로 주로 사용된다. 이에 반해 지금 우리는 이를 특정한 문학사적 의미로 주로 사용한다. 신소설이라는 용어는 일본이나 중국 등에서 건너온 개념어가 아니다. 이는 우리 문학사의 연구 과정 속에서 새롭게 정리되고 정착된 고유한 개념어인 것이다.
지금은 한국문학사에서 단절론이나 이식론을 주장하는 연구자는 거의 없는 것 같다. 한국 근대문학을 연구하면서 외국(어) 콤플렉스를 느낄 일도 흔하지 않다. 단절론이나 이식론의 상대적 위치에 있는 주장이 연속론 혹은 전통론이다. 여기서는 한국문학사의 연속성과 전통적 토대를 중요하게 여긴다. 그런데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연속론이나 전통론이라고 해서 한국 근대문학과 외국문학 사이의 연계성에 무관심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김태준도 조선소설사 연구에서, 고전적 이야기의 전통에서 신소설을 거쳐 현대소설이 나왔지만 그러한 변화 과정에서 구라파 등 외국 소설의 수입과 역할이 있었다는 사실을 지적한 바 있다. 이미 한 세기 전에 그는, 한국 근대문학사가 조선조 문학의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외국 문학의 영향을 받으며 변화했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주목했다. 모든 자국 문학사 연구에서 외국문학 관련 연구가 필요하다는 사실은 상식에 속한다. 다만, 과거와 같이 어느 한쪽의 우월성을 미리 염두에 두고 시작하는 연구가 아니라, 선입견 없이 상호 관계를 살피는 연구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김영민(한국연구원 이사장, 연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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