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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한국연구원

코로나바이러스와 혐오·배제의 연쇄고리 끊어내기 / 김헌주

영화 부산행의 좀비 바이러스와 15호칸 열차의 비극

부산행(2016, 연상호 감독)은 좀비 바이러스가 퍼진 부산행 열차 안의 탈출극을 다룬 영화이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영화 중후반부의 15호칸 씬이다. 주인공 석우와 상화 등의 남성들은 딸 수안과 아내 성경 등의 일행을 구출하기 위해 좀비들이 우글대는 9호칸에서 13호칸까지 목숨을 건 싸움을 벌인다. 그들은 우여곡절 끝에 일행을 구출하여 14호칸에 진입하지만 14호칸의 문이 완전히 닫히지 않았고, 전염되지 않은 사람들이 남아있는 15호칸의 문을 두드렸다. 그러나 문은 열리지 않았다. 자신밖에 모르는 악당 용석의 지도하에 15호칸의 문은 밧줄로 묶여 있었던 것이다. 일행은 야구 방망이로 문 유리창을 깨면서 힘겹게 15호칸으로 진입하지만 이 과정에서 성경의 남편 상화는 좀비들에게 희생당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장면이 나온다. 분노한 석우가 이 사태를 주도한 용석의 멱살을 붙잡고 고함치자 용석은 오히려 "이 새끼 감염됐어! 이 새끼 눈깔 봐 봐!"라고 15호칸의 나머지 승객들을 선동해버린 것이다. 그 순간 카메라는 용석의 말에 암묵적으로 동조하는 승객들의 눈빛을 보여주고, 감염을 의심받은 석우 일행은 16호칸으로 격리된다. 이제 열차는 좀비들이 가득한 1~14호칸, 용석 등이 남아있는 15호칸, 석우 등 일행의 16호칸으로 구획되었다. 이때, 좀비가 된 14호칸 친언니의 눈빛을 본 종길은 15호칸 생존자들의 이기심에 환멸감을 느끼며 15호칸 입구문을 열어버린다. 결국 15호칸은 아수라장이 되어버리면서 파국을 맞는다.



코로나바이러스의 공포와 혐오·배제의 연쇄

좀비 바이러스가 부산행 열차 안을 공포로 몰아넣은 것처럼, 한반도 전역에도 코로나바이러스의 공포가 엄습했다. 2019년 12월 중국 우한시에서 바이러스성 호흡기 질환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발생했고, 한국에서는 1월 20일 최초 감염자 확진 이후, 2월 11일 현재 모두 28명이 감염자로 확진되었다. 그리고 이 상황은 한국 사회를 ‘코로나바이러스 공포’로 몰아넣고 있다. 이 과정에서 바이러스의 발생지인 중국에 대한 반감도 커지면서 '노 차이나' 포스터가 등장했다(KBS 뉴스 1월 29일, 공포가 부른 혐오…도 넘은 ‘노 차이나’). 포스터에는 보이콧 차이나, 코로나바이러스란 메시지와 함께 '죽기 싫습니다 받기 싫습니다'란 문구가 새겨졌다.



관련 기사의 댓글은 매우 심각했다. "짱깨국", "이 수준의 나라라면 반중(反中)하고 입국금지 해야 한다", "중국인은 바이러스 그 자체, 병원균으로밖에 안보임", "중국은 없어져야 할 나라"등 수많은 중국 혐오 댓글이 달렸다. 이런 정서의 불을 붙이는 흐름도 있었다. 1월 말경에 한 유튜브 방송에서는 “우한 폐렴은 중국 공산당의 생화학 무기"라며 "중국의 생화학무기 연구시설에서 코로나바이러스가 유출됐다"는 근거없는 선동적인 내용이 방송되었다. 물론 이런 극단적인 여론을 한국 사회 전체로 일반화할 수는 없다. 하지만 확진자가 증가할수록 반중국 여론과 혐오 현상도 증가하는 흐름은 점차 가속화되고 있다.


이렇듯 한국에서 중국 혐오 현상이 가속화되는 반면에, 유럽에서는 동양인 전체에 대한 혐오가 확대되고 있었다(나우뉴스 2월 4일, ‘동양인=바이러스’ 인종혐오로 번진 신종코로나 사태). 블룸버그통신은 최근 신종코로나에 대한 두려움이 세계를 지배하면서 중국인에 대한 반감이 퍼지고 있다고 전했으며, 1월 29일 비즈니스 인사이더에서는 미국 애리조나주립대에서 동양계 학생을 향한 멸시와 차별이 확산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보도했다. 독일의 한국 교민은 “바이러스 옮는다”며 교실 출입을 거부당한 딸의 이야기를 전했고, 영국 프리미어리그에서 활동 중인 축구 스타 손흥민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기침을 했다가 코로나로 의심을 받기도 했다. 가히 혐오와 배제의 연쇄작용이라고 할 수 있다.


혐오·배제의 연쇄고리 끊어내기

혐오·배제의 연쇄작용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그 질문에 대한 대답에 앞서 우리에게 중국과 중국인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구체적인 데이터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2018년 12월말 기준으로 체류외국인(관광객 등 단기방문 외국인 포함) 수는 236만 7607명으로 한국 전체인구의 4.6%를 기록했다. 그 중 중국인은 107만566명(45.2%)이나 된다(머니투데이 2019년 1월 21일, 국내 체류 외국인수 236만명 역대 최대.. 중국·태국·베트남 순). 또한 대중국 경제의존도는 2019년 기준 25.1%에 달한다(파이낸셜뉴스 2020년 2월 10일, 신종 코로나, 그리고 중국 경제 의존도). 이렇듯 한국 사회에서 중국·중국인이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은 재론할 여지가 없다. 인적 교류나 경제적 차원에서도 한국은 이미 중국과 불가분의 관계가 되었음은 대다수 한국인들이 체감하고 있다.


이렇듯 윤리적 당위와 별개로 현실적인 여건상 극단적인 폐쇄정책을 쓸 수 없는 것을 직시해야 하며, 따라서 중국인과의 교류를 이성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부산행 15호칸의 승객들이 석우 일행을 배제하면서 결국 파국을 맞이한 것처럼 한국인은 중국인들을 배제하고 분리하려 했지만, 한국인들을 비롯한 동양인 전체는 유럽인들에게 혐오·배제당하고 말았다. 이것은 우리에게 혐오와 배제의 종착역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교훈을 던져준다. 혐오와 배제의 끝은 결국 공멸이다. 2020년을 맞이한 지금, 인류 공존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기 때문이다.


김헌주(충북대 박사 후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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