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와 공백
오랜 여정을 간략히 정리하자. 첫 번째 기고에서 네 번째 기고 앞부분까지의 연재분은 케임브리지 언어맥락주의 지성사의 혁신이 지난 반세기간 18세기 영국사와 계몽주의 연구를 어떻게 바꾸었는지, 특히 “잉글랜드계몽주의” 범주의 성립과 도전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를 추적했다. 네 번째 기고는 지성사와의 조우를 통해 18세기 영국 여성 문인·젠더 연구가 확장해온 과정을 그렸으며, 다섯 번째 기고는 18세기 영소설사 연구 패러다임의 형성과 전환을 다루었다. 이러한 지도그리기는 18세기 영국이라는 시공간에 대한 학계의 이해가 상이한 문제의식과 접근법에서 출발한 연구들로 겹겹이 덧대어져 있음을, 또 때로는 그러한 접근법들이 조우하여 서로의 혁신을 촉발하기도 함을 깨닫게 해준다.
하지만, 제아무리 많은 연구가 축적된 것처럼 보이는 분야라 할지라도 기존의 접근법·주제·분과 사이에 어딘가는 공백지대가 존재하며, 지금 이 순간도 그러한 영역을 찾고 메꾸고 수정하는 과정을 통해 학술장의 지식은 계속해서 갱신 중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이는 새로운 연구자가 ‘내가 도대체 새로운 기여를 하는 게 가능하기나 할까’라는 좌절감을 느끼기 쉬운 18세기 영국연구와 같은 분야에서 특히 중요하다. 우리는 겁을 먹고 처음부터 스스로의 한계선을 긋는 대신, 지도와 지도 사이 완벽해 보이는 이음매의 빈틈을 찾아내고, 그곳으로 비집고 들어가 무엇이 왜 누락되어 있는가를 확인하는 냉정함과 인내심이 필요하다.
마지막 연재는 연구사의 지도에서 그러한 공백지 한 군데를 지목하는 데서 시작한다. 그 공백이란 바로 18세기 영국의 여성옹호론적 담론, 혹은 초기 여성주의 언어의 연구다. 이미 1970년대부터 학계에서 ‘여성주의의 역사’의 재구성이 시도되었음을, 지금까지 지성사, 여성사, 영문학에서 축적되어 온 막대한 연구를 생각하면 다름 아닌 이 주제가 여전히 미개척지로 남아있다는 사실이 다소 의아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 연유는 각 분과의 연구방향을 짚어보면 어느 정도나마 짐작 가능하다.
◎ 지성사 연구: 지난 수십 년간 지성사가 보여준 엄청난 확장폭에도 불구하고, 그 중핵을 차지하는 것은 여전히 정치사상사 연구다. 이는 달리 말해 근대 초 영국사회에서 정치적인 장르로 간주되지 않았던 영역, 예컨대 여성 도덕론이나 여성 독자를 염두에 둔 소설과 같은 문헌들이 지성사 연구자들의 연구범위 바깥에 남겨져 있음을 의미한다. 실제로 여성 문제를 다루는 지성사 연구의 대부분은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나 메리 아스텔 등 여성 (정치)철학자로서 이미 어느 정도의 입지가 구축되어 있는 저자만을 다루며, ‘덜 중요한’ 여성 인물의 저작을 새롭게 파헤치는 경우는 드물다.
◎ 여성사 연구: 여성사 연구 중 여성 문인·담론 연구에서 주류를 점하는 것은 특정한 인물들의 행적·저작을 추적하는 사례연구 및 (여성주의적 문제의식 하에서) 사회문화사의 접근법을 통해 담론을 다루는 연구다. 이들에게 결여된 것이 언어적 맥락을 정교하게 재구성하기 위한 방법론이라면, 반대로 지성사 연구의 문제의식을 받아들인 여성사 연구의 경우, 아직은 그 수도 적을뿐더러 극소수를 제외하면 정치사상사 연구에서 구축된 주제와 프레임을 그대로 받아들여 활용하는 편이다. 이는 결국 여성사 내에서 당시 여성 문인·담론에 고유한 언어적 맥락을 복원하는 작업이 좀처럼 시도되지 않는 결과로 나타난다.
◎ 영문학 연구: 20세기 후반 이래 영문학 연구는 특히 신역사주의(new historicism)의 영향 하에 점차 전통적인 ‘문학텍스트’의 범주에 포괄되지 않는 문헌들까지도 연구대상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대부분의 문학연구는 문학텍스트의 ‘해석’에 집중하고 있으며, (푸코의 영향 하에) ‘비문학’ 텍스트를 끌어들여 직접적인 담론 분석을 시도하는 경우에도 당대의 언어적 실천과 맥락을 엄밀하게 역사화하는 작업은 드물다. 특히 종교와 도덕 언어처럼 18세기 여성 담론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통과해야 하는, 하지만 전통적으로 여성혐오적·반여성주의적 성향을 띠고 있다고 간주되어 온 대상의 경우 깊이 있게 파고 들어간 연구를 찾기란 쉽지 않다.
이처럼 18세기 영국의 여성 담론 또는 초기 여성주의의 연구처럼 바깥에서 보기에는 이미 누군가 다 정리해 놓았을 것 같은 주제는 실제로 그 어떤 분과에서도 정면으로 다루지 않은 채 남아있다. 초기 여성주의라 부를만한 것이 존재함을 알고 있는 연구자조차도 그것이 당대의 종교적·도덕적 담론이라는 맥락 내에서 어떻게 형성되었고, 변했고, 어떤 의제와 쟁점을 지녔고, 어떤 논리로 작동했는지를 들여다보지는 않는다. 이제부터 이야기할 나의 박사학위논문 『새뮤얼 리처드슨과 초기 여성주의 도덕 언어』는 부분적으로 이러한 공백을 채우는 작업이기도 하다.
『새뮤얼 리처드슨과 초기 여성주의 도덕 언어』: 여성주의 도덕 언어의 탐구
많은 학위논문이 그렇듯, 나의 작업 역시 애초의 계획과는 매우 다른 궤적을 그리며 나아갔다. 2018년의 첫 구상에서 나는 크게 두 가지 과제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하나는 영문학 연구와 지성사적 방법론이 효과적으로 접합될 수 있음을 입증하는 것이었다. 나는 처음 대학원에서 영문학 공부를 시작할 때 매료되었던 비평/비판이론에 점차 회의적으로 된 상태였다. 특정한 이론에 기반한 문학연구는 그 이론의 유행이 지나가는 순간 더는 생명력을 부여받지 못한다는 점에서 지속적인 가치를 얻기 어렵다. 무엇보다, 종종 ‘역사’와 ‘정치성’의 기치를 내걸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의 이론(적 연구)은 대부분 실제 역사·정치 연구의 기준에 볼 때 다소 단순한 수준의 분석에 만족하는 경향이 있다. 이론의 약속과 실제 사이의 괴리에 실망감을 느낀 내게 케임브리지학파의 정치사상사 연구는 역사와 정치의 성찰은 물론, 텍스트의 해석에서도 보다 엄밀하고 설득력 있는 작업을 가능하게 하는 모델로 다가왔다. 하지만 지성사 연구의 이론적 전제를 이해하는 일과 이를 (특히 그러한 문제의식이 널리 공유되지 않은 분야의) 실제 작업으로 구현하는 일은 별개다. 나는 학위논문을 통해 영문학연구에서도 지성사적 접근법을 충분히 활용할 때 매우 생산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음을 입증하고자 했다.
전자가 10년 가까운 기간 동안 조금씩 만들어져 온 문제의식이라면, 젠더 연구의 관점은 당대의 쟁점과 닿아있었다. 2010년대 중후반 한국을 살아간 많은 인문사회 연구자들과 마찬가지로, 나 또한 2015년 이래 사회를 강타한 페미니즘 및 젠더 논쟁의 부상에 깊은 충격을 받았다. 그중 하나는 문화적·담론적 텍스트를 읽을 때 성별화된 역할·규범의 작동을 좀 더 주의깊게 살펴보게 된 것이다. 특히 2010년대 한국의 대표적인 대중문화 장르라 할 수 있는 웹툰을 보면서, 로맨스 웹툰의 ‘남주’가 당시 유통되던 여러 여성주의적 의제에 공감하는, 과거에 비해 한층 더 부드럽고 지적인 남성상에 가까워진 사례들을 접할 수 있었다. 부분적으로 G. J. 바커-벤필드(G. J. Barker-Benfield)의 (유감스럽게도 아직 국역되지 않은) 『감성의 문화』(The Culture of Sensibility: Sex and Society in Eighteenth-Century Britain, 1992)에 힘입어, 나는 문득 2015년 이후 몇 년 동안 한국의 대중적 로맨스와 18세기 영국 소설이 유사한 변화를 겪었다는 생각을 떠올리게 되었다. 여러 차이에도 불구하고 ‘바람직한 남성’의 상(像)이 바뀌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둘은 상통하는 바가 있었다.
크고 근본적인 문제의식을 구체적인 논문구상으로 벼려내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나는 운이 좋았다. 잠깐 들렀던 옥스포드 엑세터 칼리지에서 18세기 영국의 대표적 소설가 새뮤얼 리처드슨(Samuel Richardson)의 아직 제대로 연구되지 않은 마지막 소설 『찰스 그랜디슨 경의 이야기』 (The History of Sir Charles Grandison, 1753-54)를 먼저 읽어보라는 조언을 받았던 것이다. 이제는 절판된 약 1600쪽 분량의 비평판을―새로운 4권짜리 비평판은 학위논문 제출이 끝난 2022년 9월에 출간되었다―꾸역꾸역 읽고 난 뒤 나는 학위논문에서 문학연구와 지성사, 남성성 연구를 결합할 수 있겠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랜디슨』은 계몽의 문화와 남성성 문제를 저자의 더욱 유명한 다른 소설 이상으로 깊이 있게 담아내고 있는, 바로 나와 같이 지성사와 영문학을 함께 공부한 연구자들에게 가장 안성맞춤이라고까지 할 수 있는 텍스트였다.
기쁨도 잠시, 나는 곧 더욱 커다란 난관이 기다리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랜디슨』이 앞서와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면, 이는 구체적으로 어떠한 맥락과 연결되어 있는가? 소설텍스트의 맥락화는 그것을 배치할 맥락(들)이 사전에 어느 정도 구축되어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하다. 리처드슨 연구의 방대함에도 불구하고, 내가 찾는 맥락을 규명해주는 작업은 아직 존재하지 않았다. 결국엔 나 자신이 직접 텍스트를 둘러싼 맥락을 찾아 재구성하는 기약없는 작업에 뛰어들어야 했으며, 실제로 이는 논문 준비 과정에서 가장 막막하고 혼란스러운 시간이었다.
다행히 몇 가닥의 실마리가 있었다. 먼저 2010년대 초부터 새롭게 출간된 케임브리지판 새뮤얼 리처드슨 저작집(The Cambridge Edition of the Works of Samuel Richardson)에 힘입어 리처드슨이 소설을 집필하기 전에 무슨 문제의식을 갖고 어떤 장르·유형의 글을 썼는지를 추적할 수 있었다. 저자로서의 그는 근본적으로 도덕가(moralist)였고, 이는 그의 소설작품에도 해당되었다. 좀 더 중요한 단서는 그의 소설에 담긴 남성성 담론, 좀 더 구체적으로 남성의 개혁을 부르짖는 언어가 여성 담론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예상이었다. 18세기 영국 문인들은 자신들이 과거와는 질적으로 구별되는 ‘문명화된’ 근대에 진입했다는 인식을 공유하기 시작했으며, 따라서 ‘전근대’에나 어울릴 법한 야만적이고 미개한 풍속을 교화해야 한다고 믿었다. 남성성 또한 계몽과 교화의 대상 중 하나였다. 남성성 교화의 담론은 다양한 갈래로 구성되어 있었고, 리처드슨의 그것은 기본적으로 여성과의 관계에서 남성이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에 초점을 두었다. 이는 리처드슨 소설의 남성 담론을 제대로 맥락화하기 위해서는 다시 당대의 여성 담론을 재구성할 필요가 있음을 의미했다.
논문 작성이 자꾸 미뤄진다는 주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그저 라이센스로서의 의미만을 갖는 학위논문에 만족할 수 없었던 나는 18세기 전반부의 여성 담론, 특히 여성을 개혁하고 지지하는 초기 여성주의적 전통을 탐구하는 과제에 뛰어들었다. 이 주제에 관해 완성된 그림을 제시하는 선행연구를 찾을 수 없었기에, 부분적인 단서를 제공하는 몇몇 이차문헌에 의지하면서 그러한 주제를 포함하는 일차문헌들을 하나씩 찾아 읽기 시작했다. 문제는 단순히 자료들을 읽고 정리하는 것을 넘어 문헌들이 공유하는 언어적 패러다임을 식별하고 또 그것을 구체적인 역사적 서사 속에 위치시키는 데 있었다―마치 J. G. A. 포콕의 걸작들이 보여준 바와 같이 말이다. 지난한 고투의 과정을 생략하면, 핵심은 결국 다음의 물음에 답변하는 것이었다. 여성의 권익을 옹호하고 그 지위를 제고하려는 담론이 유의미하게 존재하지 않는 사회에서, 그와 같은 담론의 출현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앞의 질문은 다시 두 가지 질문으로 나누어질 수 있다. 첫째, 여성옹호론·여성개혁론자들이 정당성을 확보하고, 또 논지를 정교화하기 위해 가져와 사용할 수 있는 언어적 자원은 어떤 것이 있었나? 18세기 초기 여성주의의 언어적 토대는 무엇인가? 그에 대한 답변은 당대인들이 공유하던 도덕 언어로부터 찾을 수 있었다. 18세기 도덕철학과 자연법, 교육론 전통에 기초적인 배경지식을 갖고 있었던 나는 특히 사무엘 푸펜도르프와 존 로크를 통해 당대 도덕 언어의 핵심에 의무론적 사고가 있음을, 초기 여성주의자들 또한 이를 전유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오늘날과 같이 만인이 ‘권리’를 보유한다는 감각이 통용되지 않는 세계에서, 초기 여성주의자들은 당대에 유통된 의무론적 논리를 활용하여 여성의 미덕(virtue) 및 탁월성을 주장하고, 다시 이를 기반으로 여성의 교육 및 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할 수 있었던 것이다.
두 번째로, 그러한 주장은 어떻게 사회적 동력을 획득할 수 있었는가? 단서를 제공한 것은 잉글랜드국교회를 다룬 교회사 연구였다. 이전 연재에서 짚어본 바와 같이, 1980년대 이래 18세기 국교회사 연구에서는 왕정복고·명예혁명 이후 국교회와 성직자들이 어떤 문제의식을 갖고 무슨 과제에 대면했는가를 새롭게 조명하는 중요한 작업들이 계속해서 제출되었다. 17세기 중반 혁명정부에 의해 철폐되었다가 왕정복고를 거치며 간신히 부활한 국교회의 사제들은 다시는 그와 같은 실패가 반복되지 않기 위해 진력했으며, 이는 풍속개혁운동(movement for the reformation of manners)과 같이 사회의 도덕적 기풍을 쇄신하려는 시도로 이어졌다. 가정과 여성은, 국교회 사제 리처드 얼스트리(Richard Allestree)와 같은 저자들이 집필한 각종 도덕지침서에서 잘 나타나듯, 그러한 노력을 위한 전략적 교두보였다. 이를 위해 국교회 여성개혁론은 여성이 도덕적·지적 역량을 가진 주체임을 전제하고 여성의 교육을 부르짖었다. 같은 전제를 공유한 초기 여성주의 담론은 국교회 개혁론의 영향력에 힘입어 여성의 권익과 (남성과의) 동등성이라는 주제를 사회적인 쟁점으로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새뮤얼 리처드슨과 초기 여성주의 도덕 언어』 1부는 초기 근대 시기 도덕 언어의 기본적인 전제를 제시하고, 그로부터 여성옹호론의 전략과 논리가 만들어질 수 있는 가능성을 검토하는 데서 시작했다. 이어 17세기 후반의 ‘여성 논쟁’이 다양한 지적 전통과 닿아있었음을 보여준 뒤, 국교회 풍속개혁운동의 맥락 속에서 18세기 ‘국교회 여성주의’의 주제들이 형성되고 확장되는 과정을 따라갔다. 18세기 중반 새뮤얼 리처드슨의 동시대인들까지 오면, 비록 한정된 저자·독자 집단에서 유통되었다고는 해도 잡지와 논쟁 팸플릿에서 여성의 상황을 둘러싼 논쟁을 흔히 접할 수 있게 된다. 일단 초기 여성주의 도덕 언어 전통을 복원한 이후 다음 과제는 분명했다. 리처드슨과 그의 소설은 이러한 전통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었는가?
『새뮤얼 리처드슨과 초기 여성주의 도덕 언어』: 초기 여성주의의 소설화
1부의 골격이 어느 정도 갖춰진 시점에서 2부의 집필은 비교적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리처드슨 연구를 본격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노력이 필요하다. 오늘날의 비평판을 기준으로 할 때 리처드슨 작품집의 분량은 5-6천여 쪽, 그가 주고받은 서간 선집은 10여 권에 달한다. 하지만 이를 시간적 순서에 따라 배치해보면 그의 관심사가 변모하는 과정을 하나의 일관된 서사로 구축하기란 어렵지 않다. 정치평론지의 간행에 관여했던 짧은 시기 이후, 저자로서 리처드슨의 주된 관심사는 도덕, 특히 국교회를 중심으로 하는 기독교 도덕론의 설파였다. 그의 역량이 가장 잘 발휘된 영역은 여성 독자를 교육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소설 장르였다. 놀라운 성공을 거둔 『파멜라』 이후, 리처드슨의 소설은 점차 당대 여성 문인들이 관심을 기울이던 주제, 즉 여성을 둘러싼 갖가지 부조리 및 여성이 그에 맞서 싸우기 위해 필요한 도덕적·지적 교육에 관한 내용을 전면에서 다루게 됐다. 후기의 대표작 『클라리사』와 『그랜디슨』은 사실상 초기 여성주의의 문제의식을 소설로 옮긴 작업이라고 말할 수 있다.
리처드슨의 소설에서 당대 여성 담론과 초기 여성주의의 주요 주제를 찾아내는 일은 그다지 큰 문제가 아니었다. 2부 작업에서 좀 더 많은 고민을 요구한 것은 그보다는 ‘근대 소설’ 장르의 규정이라는 문학사의 오랜 쟁점에 어떠한 답변을 제출하느냐였다. 다섯 번째 기고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오랜 기간 동안 영소설사 연구는 18세기 소설로부터 20세기 모더니스트들의 “의식의 흐름”으로까지 이어지는 소설 장르의 ‘발전’ 과정을 자명하게 전제해왔다. 여기서 근대 소설의 핵심은 개인의 내적 심리를 사실적으로 기술하고·재현하는 데 있는 것으로 규정되었으며, 리처드슨의 서간체 소설은 그 주요한 출발점 중 하나로 간주되었다. 하지만 리처드슨과 그를 둘러싼 문헌들을 파고들어 갈수록 이러한 통념의 설명력은 낮아진다. 무엇보다도 영국에서 17세기 후반부터 유통되기 시작한 기존의 서간체 소설들과 리처드슨의 소설 사이에 직선적인 발전의 궤적을 그리기는 쉽지 않다. 당대 출판시장에서 유명인들의 내밀하고 사적인 삶을 드러내는 서신집이 나름의 인기를 끌었으며 이를 차용한 소설도 여럿 출판되었으나, 리처드슨은 여기에 명확히 비판적인 입장이었다. 실제로 오늘날 서간체 소설의 대명사로 불리는 『파멜라』는, 독자들의 시선을 끌기 위한 ‘선정적인’ 요소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으로는 그 자신이 직접 집필·출간하기도 했던 서신교범집과 같은 교육적인 출판물에 가까운 텍스트였다.
리처드슨의 복잡한 정체성 역시 해석을 까다롭게 만드는 요인이었다. 그를 소설가로 기억하는 오늘날의 시선과 달리, 리처드슨의 가장 중요한 정체성은 인쇄업자였다. 그는 10대 때 인쇄공의 도제로 들어가 이후 인쇄공 장인(master printer)의 인가를 획득했으며, 나아가 자신의 작업장에서 의회의 법령을 포함해 수천 종의 문서를 인쇄할 만큼 사업을 성공시켰다. 이때 리처드슨의 역할이 단지 주어진 텍스트를 전달받아 인쇄하는 일에 국한되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는 다른 저자·비평가·출판인·문인들, 즉 출판물의 구상에서 출판·배포까지의 과정에 참여하는 다양한 행위자들과 긴밀하게 교류했고, 종종 텍스트의 수정과 편집에, 필요하다면 기획에까지 깊게 개입했다. 마치 오늘날의 노련한 출판업자들이 그러하듯 말이다. 종종 문학전공자들은 어떤 소설가를 이해할 때 마치 그가 소설작품만을 읽고 쓰며 살아간 사람인 양 전제하는 함정에 빠지곤 한다. 하지만 적어도 리처드슨만큼은 그러한 틀로 이해해서는 곤란하다. 출판시장을 넓게 바라볼 수 있었던 그는 자신의 소설이 성공할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 대표적으로 『파멜라』는 소설 장르의 인기가 하락한 상황에서 독자들의 새로운 수요를 겨냥한, 리처드슨의 다양한 홍보전략이 투입된 결과물이기도 했다.
리처드슨 자신의 관점 혹은 인식 지평을 재구성하려는 노력은 그가 쓰고자 하는 ‘소설’이 정확히 무엇이었는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후대의 평자들은 과거의 소설작품을 이해하고 평가할 때 암묵적으로 자신들이 전제하고 있는 특정한 소설관을 기준으로 삼기 쉽다. 하지만 리처드슨 자신이 그러한 기준에 부합하고자 했는지, 혹은 애초에 그러한 기준을 염두에 두기나 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달리 말해, 우리는 리처드슨이 생각하고 목표로 한 소설이 과연 무엇이었는가를 바로 그 자신의 시점에서 질문할 필요가 있다. 그는 대부분의 소설작품이 해롭다고 생각하면서도, 동시에 (상업적인 고려를 내려놓지 않으면서) 소설이 독자들의 도덕적 교육을 위한 하나의 수단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후자의 가능성을 실현하기 위해 그는 등장인물들의 발화내용과 글투만이 아니라 서사의 형식에까지 공을 기울이는, 소설 장르의 ‘고급화’라 할만한 시도를 수행했다. 실제로 그가 출간한 네 편의 소설을―『파멜라』, 『파멜라』 속편, 『클라리사』, 『그랜디슨』―차례대로 읽어보면, 각각의 작품에서 서간체라는 표면적인 공통점 아래에 장르 형식이 조금씩 바뀌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한 장르 실험의 의미는 당시의 소설만 읽어서는 알아차리기 어렵다. 18세기 출판시장에서 더 폭넓고 꾸준하게 소비된 다른 장르들, 예컨대 팸플릿과 교육지침서, 그리고 『스펙테이터』와 같은 사회·도덕 평론지를 함께 본다면, 리처드슨이 다양한 장르를 참조하여 소설 장르를 새롭게 구축하고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초기 여성주의의 소설화는 내용의 차원만이 아니라 형식의 차원에서도 함께 진행되었다.
학위논문의 1부가 리처드슨의 텍스트가 속해 있던 언어적 맥락을 제시하는 과정이었다면, 2부는 리처드슨이 소설 쓰기를 통해 무엇을 하고자 했으며 또 실제로 무엇을 했는가를 해석한다. 여기에 암시되어 있듯, 학위논문의 2부는 (포스트)구조주의의 유입 이후 많은 문학연구를 지배해온 ‘저자의 죽음’이라는 전제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텍스트 또는 텍스트적 실천을 하나의 행위로 부를 수 있다면, 그러한 행위가 지닌 역사적인 의미를 해석하기 위해서는 행위자로서의 저자 개념을 다시 도입해야 한다―아마도 브뤼노 라투르의 경험적 연구나 마크 비버(Mark Bevir)의 “약한 의도주의”(weak intentionalism) 개념을 접한 독자라면 행위(자)와 의도, 의미 사이의 연관성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2부는 한 명의 저자-행위자로서 리처드슨의 이력을 추적하면서 그가 텍스트 안팎에서 어떤 의도들을 품고 있었는지를 재구성하고, 다시 그의 소설이 그러한 의도에 따라 초기 여성주의의 언어적 자원을 어떤 방식으로 활용하고 있는가를 검토했다. 이를 통해 나는 지금까지 여러 리처드슨 전문가들이 수행해온 방식과 상당히 다른, 그러나 역사적으로 엄밀한 독서가 가능함을 보여주고자 했다.
지성사적 접근법을 통해 더 정확하고 풍부한 문학연구가 가능함을 보여주겠다는 당초의 목표는 얼마나 성공적이었을까? 한국에서 18세기 영문학을 다룬 370쪽짜리 박사학위논문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을 사람이 많지 않음을 고려할 때, 여기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가 단시간에 이뤄질 것 같지는 않다(물론 나는 내 목표가 달성되었다고 믿는다). 18세기 연구를 구성하는 기존 분과들의 성과를 전제로 하되 그것들 사이의 공백지를 겨냥한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모든 전문적인 연구들이 그러하듯, 이 연구의 의미를 음미하기 위해서는 독자들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18세기 영문학 전공자에 국한되지 않는, 예컨대 젠더의 문제에 관심을 가진 이들을 포함한 한국의 다양한 독자들을 위해서도 글을 썼다. 그러한 독자들이 이처럼 복잡한 구조물에 조금 더 편안하게 들어올 수 있는 경로를 제공하는 그림이라는 점에서, 지금까지의 연재는 정말로 ‘연구자의 지도’이기도 한 셈이다. 언젠가 기꺼이 미로 속으로 발걸음을 내디딜 이들을 기다리며, 연재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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