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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한국연구원

‘부정선거’라는 확증 편향과 공론장의 회복 / 김헌주

2012년 대선은 그 어느 선거보다 진보와 보수의 진영간 대립이 극에 달한 선거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극적 사망에 따른 지지자들의 분노와 열망이 그의 친구이자 정치적 동지였던 문재인 후보에게 모아지면서 민주·진보진영의 결집이 이루어졌다. 보수 진영 또한 보수의 상징인 박정희의 직계 가족이자 유신체제의 계승자인 박근혜 후보의 깃발 아래 단결하였다. 모든 선거가 그렇지만 이 시기에도 각 진영은 각자의 열망을 투영시켜 선거판을 해석했다. 보수진영은 총선의 승리를 바탕으로 재집권이 가능하다고 믿었고 민주·진보진영은 유신체제의 부활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확신한다. 선거결과는 51.6%라는 거짓말같은 숫자와 함께 박근혜 후보의 승리로 결판이 났다.


문재인 후보를 지지했던 다수의 유권자들, 특히 20~40대의 젊고 진보적인 성향을 가진 이들은 선거결과에 크게 낙담했다. 세대 전체가 집단적 우울증에 빠졌고, 박근혜 후보를 지지했던 노인세대를 혐오하는 정서까지 생겨났다. 그리고 이러한 집단적 우울증세는 현실을 부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부정선거 의혹이 그것이다.


당시 일부 유권자들에 의해 제기된 부정선거 의혹은 눈덩이처럼 커졌고, 낙선자인 문재인이 해당 의혹을 정면으로 부정하였음에도 의혹제기는 끊이지 않았다. 이러한 의혹제기는 사실로 밝혀진 것은 없었지만 보수정권에 비판적인 유권자들 중 상당수는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결국 민주·진보진영의 대표적 스피커인 김어준은 19대 대선 직전인 2017년 4월에 선거부정 의혹을 파헤치는 내용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개봉했다. 전국 모든 개표소에서 등장하는 특정한 패턴과 숫자 즉 ‘K값’이 발견되며, 따라서 개표 선거부정이 있다는 것이 요지였다. 이 주장에 과학자, 수학자, 통계학자들의 견해까지 더해지면서 제법 진지한 논의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이 ‘K값’이라는 의혹은 탐사보도 언론인 뉴스타파 등 각종 언론과 시민사회의 집중적인 비판을 받았고 의혹제기에 대한 결론은 나지않은 채 시간이 흘렀다. 물론 다수의 양식있는 대중들 또한 ‘K값’의 실체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시간이 지나 21대 총선이 끝나자마자 비슷한 논란이 불거졌다. 이번에는 보수진영에서 부정선거 의혹을 들고 나왔다. 8년 전의 데자뷰 같은 이러한 현상은 4.15 총선에서 처참하게 무너진 보수정치의 실체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보수 유권자들의 심리를 파고들면서 확대재생산되었다. 흥미로운 것은 의혹제기의 방향이 매우 유사하다는 점이다.


그 시작은 역시 특정 패턴의 숫자가 등장한다는 점이었다. 정일영, 민경욱, 이정미 후보의 3파전으로 치러진 인천 연수을 선거에서 세 후보 세 후보의 (관외 사전투표 득표수)÷(관내 사전투표 득표수) 결과가 모두 0.39라는 일정한 계산값을 보인다는 주장이 나온 것이다. 이 주장은 더 나아가 서울·인천·경기의 민주당 대 통합당 사전투표 득표율이 소수점을 제외하고 ‘63 대 36’ 비율로 나온 점을 근거로 63:36이라는 의혹제기로 확대되었다. 재선에 실패한 민경욱 의원이 인천 선관위를 고발하고 각종 보수 유튜브 채널에서 이 주장을 확대재생산하면서 부정선거 의혹은 일파만파로 커졌다. 더하여 일부 연구자들까지 이 논쟁에 가세하면서 전선은 더 복잡해졌다.


필자는 이 글에서 부정선거 의혹을 진지하게 검증하고 싶지는 않다. 양식있는 독자들이라면 이러한 주장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는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직관적으로 생각해봐도 각 정당별 지지자들로 구성된 시민 감시인단이 존재하는 현실에서 전국 모든 개표소의 투표용지를 바꿔치기 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보는게 타당하다. 만약 그런 조작이 가능하다면 한국사회 모든 시스템을 부정할 수밖에 없는데, 이 사회가 그 정도 수준은 아니라고 본다. 애당초 이 논쟁은 사회심리학적 영역이지 과학과 통계의 영역은 아니라고 정리하는게 맞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대중의 심리적 아미노 상태를 파고들어 ‘확증편향’을 강화하는 선동의 논리를 비판하는 것이다. 카톡, SNS, 팟캐스트, 유튜브 방송 등의 뉴미디어에서 양산되는 무분별한 가짜뉴스와 허위선동에 대한 문제는 지속적으로 지적되어 왔다. 팩트체킹 시스템이 사실상 전무한, 각 진영이 원하는 의견만을 취사선택해서 들려주는 ‘해장국 언론’이 득세하는 현실이 가져온 참사가 이 부정선거 논란이다.


정치적 지향에는 중립은 없다고 생각한다. 양비론이 가지는 한계 또한 뚜렷하다는 것은 한국정치사에서 이미 증명되었다. 따라서 모든 정치적 발언은 정파적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필자 역시 정파성이 있음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정파성도 최소한의 원칙은 필요하다. 민주사회에서 최소한의 합리성도 갖추지 못한 음모론이 배격되어야 하는 것은 언론과 시민사회, 지식인들이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공론’으로 합의되어야 한다. ‘공론’의 최저선이 무너질 때 공동체는 비싼 대가를 치룰 수밖에 없다. 4.15 총선은 민주화세대가 한국사회의 주류가 되었음을 공인한 역사적인 선거였다. 이 역사적 변화 앞에 ‘공론장’의 회복도 같이 진행되길 바라는 것이 지나친 기대는 아닐 것이다.


김헌주(연세대학교 근대한국학연구소 HK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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