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시리즈 <스위트홈>(원작: 김칸비, 황영찬의 웹툰 <스위트홈>)에 나오는 괴물들의 움직임과 겉모양을 보면, 우선 떠오르는 것은 1982년작 할리우드 영화 <괴물(The Thing)>이다. 존 카펜터가 감독을 맡고 커트 러셀이 주연을 맡은 이 영화는 기괴한 괴물을 생생하게 보여 주는 특수 촬영으로 당시에는 명망이 높았다.
이 영화의 내용은 남극에 있는 연구 기지에 있는 대원들을 무서운 외계 생명체가 공격해 온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영화 속에 나오는 이 외계 생명체는 그냥 커다란 덩치로 등장해 대원들을 잡아 먹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몸을 감염시키듯이 하면서 그 형체를 변형시켜 사람 자체를 괴물로 바꾸어 공격하는 습성을 갖고 있다. 그 바뀐 모습이란 것은 보통 지구의 생물을 생각하며 떠올릴 만한 상식을 완전히 초월하는 형상이므로, 영화를 지켜 보고 있으면 그 겉모양부터가 무척 기괴해 보인다. 사람이었던 모습이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이상한 해충과 비슷한 형태로 변하는 것을 이 영화는 생생하게 보여 주었다.
컴퓨터 그래픽이 본격적으로 활용되기 전에 나온 영화라, 이런 공상적인 괴물의 모습을 진짜처럼 생동감 있게 보여 주는 것이 쉽지는 않을 시절이었는데도 이 영화는 용케 거기에 제대로 성공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에게 더 강한 인상을 남기기도 했다. 괴물의 모습이 흉칙하고 이상하게 꾸며져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런 모양의 괴물이 자연스럽게 영화 화면 속에서 움직이는 모습을 보여 주는데도 성공했다. 형상이 갑작스럽게 변화하는 과정도 무척 그럴듯해 보였다. 그 덕택에 지금까지도 무서운 외계인이나 괴물이 나오는 공포 영화 속 괴물을 꼽아 보라면, 이 영화 속 괴물의 모습은 자주 언급된다. 그렇기에 영화 <괴물>에 나오는 괴물은 그 후에 나오는 다른 많은 공포 영화 속 괴물의 움직임과 모습을 연출하는 데 많은 영향을 미쳤다.
나는 <스위트홈>에 나오는 괴물의 모습이 1982년 영화 <괴물>에 직접 영향을 받았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30년, 40년간 이런 부류의 괴물 모양을 연출하는 긴 유행의 흐름 속에서 간접적인 영향을 받았다고 말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원래 사람이었던 것이 사람의 모습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징그럽고 이상하게 변형되는 모습의 괴물로 변하고, 그 괴물을 피해 도망치기도 하고 맞서 싸우기도 한다는 영상을 보고 있으면, 1982년 <괴물>의 냄새가 묻어 있는 느낌이 든다. 1982년 이후로 비슷한 괴물이 나온 영상은 뭐든 <괴물>의 냄새가 묻어 있을 듯 해서 그런 느낌을 받았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1982년판 <괴물> 영화에는 원작이 있다. 바로 1951년판 영화 <다른 세상에서 온 괴물(The Thing from Another World)>이다.
이 영화는 전체 중심 줄거리가 1982년판 <괴물>과 거의 같은 옛 흑백 영화인데, 역시 재미있는 영화이고 1982년판 <괴물>만큼은 아니지만 비평과 흥행 양쪽에서 성공을 거두었다고 할 수 있는 영화다. 크리스천 나이비가 감독을 맡고 하워드 혹스가 제작을 맡았는데, 이중에 하워드 혹스는 <리오 브라보>나 <무법자> 같은 고전 할리우드 시대의 명작 영화들의 감독으로 더 잘 알려진 인물이다. 하워드 혹스가 주류 느낌에서 살짝 벗어나는 것 같은 이런 SF 공포 영화를 제작했다는 점이 재미있는데, 신문이나 잡지에 돌아 다니는 이야기를 보면, 이 영화의 감독으로 크리스천 나이비가 표시되어 있기는 하지만 사실은 하워드 혹스 본인이 감독 역할에도 많이 참여했다고 한다.
1951년판 <다른 세상에서 온 괴물>에는 1982년판 <괴물>에 나오는 강렬한 괴물의 모습은 나오지 않는다. 지켜 보고 있으면 <다른 세상에서 온 괴물>에도 괴물이라고 할만한 것이 나오기는 나오지만, 지금 보면 밋밋하다는 생각이 들만한 그 시대에 유행하던 등장인물의 한 형태 정도다. 그 외에도 몇 가지 다른 점이 있다. <다른 세상에서 온 괴물> 역시 추운 곳에 고립된 기지가 주 무대이지만, 여기에서는 위치가 남극이 아니라 북극이다. 또 1982년판 <괴물>에는 여성 등장인물이 사실상 아무도 등장하지 않는데, 그에 비해 원판 영화인 <다른 세상에서 온 괴물>에는 마가렛 셰리던이 연기하는 여성 등장 인물이 제법 중요한 역할을 갖고 있다는 점도 눈에 뜨인다. 다시 말해서, 원판에 오히려 조금 더 다채로운 등장인물이 등장한다.
공통점으로는 1951년판 <다른 세상에서 온 괴물>에서도 우리 사이에 괴물이 숨어 있을 수 있고, 우리 중에 섞여 있던 괴물이 튀어나와 우리 공동체를 위험에 빠뜨린다는 내용이 나온다는 점이 있다. 이런 상황은 장벽 너머 바깥 쪽에 괴물이 있다는 식의 괴물 이야기들과는 다르다. 만약, 어느 날 괴물이 우리 마을을 습격하기 위해 쳐들어 온다는 줄거리의 전설이라면, 용감한 병사들이 마을 경계에 나아가 방벽을 세우고 괴물이 들어 오지 못하도록 싸우고 막아내고 쫓아 내면 될 것이다. 그런데, <다른 세상에서 온 괴물>에 나오는 괴물은 바깥에서 쳐들어 오지 않는다. 이미 우리들 사이에 섞여 있다. 우리들 중에서 괴물이 나타난다는 형태의 이야기다. 괴물 이야기가 이런 방향을 취하고 있다는 점은 <스위트홈>과 통한다.
따져 보면 이런 부류의 이야기는 1950년대에서 1960년대 초까지 미국 영화계에서 제법 여러편이 나왔다. 가장 잘 알려진 예를 꼽아 보자면, 역시 1956년에 나온 영화 <신체강탈자의 침입 (Invasion of the Body Snatchers)>일 것이다. 이 영화는 외계에서 온 이상한 생명체에게 사람이 감염되면, 사람의 본체는 죽은 것이나 다를 바 없게 되고, 그 사람과 똑같은 모습으로 변신한 외계인들이 그 사람 행세를 하면서 돌아 다니며 자신을 더 퍼뜨려 나간다는 줄거리로 진행된다. 이 무렵의 미국 텔레비전 시리즈 중에도 비슷한 소재를 이야기로 꾸민 것들이 있었던 기록이 보인다.
요즘 영화 평론가들은 이런 영화들이 유행했던 것은 아마도 당시 냉전 분위기의 영향 때문인 것 같다고 보는 경우가 많다. 당시 사람들은 공산주의자들이 혁명을 일으켜 정부를 뒤집기를 원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공산주의자들은 정부를 뒤집을 생각을 마음 속에 품고 우리 사회 각계각층에 숨어 있을 수 있다. 이런 인물들은 세계 공산주의의 총본산인 소련을 비롯해서 공산주의 국가들에 공감하고 있는 사람이고 그런 다른 나라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사상을 더 펼쳐 나가려고 한다. 결국 이들은 공산주의 국가의 도움을 받아 우리나라 정부를 엎어 버리고 싶은 마음을 품고 있는 숨어 있는 역적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이 소련과 같은 공산주의 국가와의 대결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이런 내부의 적을 퇴치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맥카시즘이라는 말이 탄생한 원인이 된 인물인 조셉 맥카시 미국 연방 상원의원 같은 정치인은 그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이들은 이렇게 내부에서 공산주의에 동조하고 미국 정부를 엎어 버리고 싶어하는 성향을 가진 사람들을 퇴치하지 않으면, 내부에서 미국이 곪아 들어가 소련이나 중국에게 미국이 지배 당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생각이 퍼져 나가자, 일종의 공포증 같은 분위기가 어느 정도 생겼던 것 같다.
그렇다 보니, 우리 사이에 사실은 외계인이 숨어 있고 그 외계인이 어느 날 돌변해서 우리를 다 죽일거라고 하는 SF 영화들이 바로 그 분위기를 타고 공산주의에 대한 공포를 상징하며 유행했다는 말은 그럴듯하게 들린다. 1962년에 나온 영화 <맨츄리안 캔디데이트(The Manchurian Candidate)>에는 아예 한국전쟁 당시에 공산군에게 포로로 잡혀간 미군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공산주의자들에게 기묘하게 세뇌 되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 사람은 풀려나서 고향으로 돌아 오고 평범하게 살아가지만, 사실 머리 속 깊은 곳이 공산주의자들에게 세뇌 당하여 이상하게 조작되어 있다. 보통 미국인들 사이에 섞여 일상 생활을 해 나가던 이 사람은, 어느날 그 조작된 뇌가 발동하게 되어 홀린 것처럼 미국 대통령 후보를 암살하려고 나선다.
한국전쟁을 직접 경험했던 대한민국에서는 공산주의 공포증이 더욱 강할 수 밖에 없는 분위기였다. 정치적인 충돌의 고비고비마다, “너 사실 공산주의자 아니냐” “너 사실 우리나라를 팔아먹으려고 하는 것 아니냐”는 식의 싸움은 자주 벌어졌다. 이런 식으로 너무 살벌한 이야기가 현실에서 계속 터져 나오는 것이 나라 분위기이다 보니, 한국에서는 공산주의에 대한 공포를 공포 영화 속에서 상징하는 이야기는 오히려 미국보다 덜 유행했던 것 같다. 차라리 노골적인 반공물, 반공영화들이 긴 시간 수없이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역시, <스위트홈>과 <다른 세상에서 온 괴물> 사이에 놓여 있는 간접적인 관계에 대해서는 조금 이야기 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1950년대 미국에서 공산주의 공포에 대한 SF물들이 여러 편 성공을 거두면서, 우리 내부의 괴물, 우리 내부의 공포에 대한 이야기들이 하나의 유형을 이루며 깊게 정착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런 정착된 유형이 있고, 본 받아 볼만한 수작 영화들이 나왔으니, 이후에 공산주의 공포에 대한 유행이 지나고 나서도 비슷한 영화들은 꾸준히 나온 것 같다. 그러는 동안, 공포물 전반에 걸쳐 유사한 소재들이 다양하게 변형되어 널리 활용 되었다. <스위트홈> 역시 여러 모로 꾸미고 다듬어 탄생한 이야기인만큼, 이렇게 탄생한 다른 공포물의 장점을 흡수했을 것이다.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보면, 1951년판 <다른 세상에서 온 괴물>은 사실 소설 원작이 있는 영화다. 존 W. 캠벨 주니어가 쓴 단편 소설 <거기 누구냐 (Who Goes There?)>가 바로 그것인데, 이 소설은 다시 수 십년 시대가 앞서는 1938년에 나왔다. 존 캠벨은 영미권에서 SF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시기에 중심에서 활약한 대표적인 작가이자 SF 잡지 편집자인 인물이다. 그리고 요즘 <거기 누구냐>는 존 캠벨이 직접 쓴 소설로서 인기를 끈 대표작으로 평가 받고 있다. 한국에도 <SF 명예의 전당> 시리즈 4권으로 편집되어 번역본이 나왔다.
이 소설의 배경은 다시 남극이고, 연구자들이 몇 백 만년 전에 남극에 추락해 처박혀 있던 외계인의 우주선을 파내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후 내용의 핵심은 1951년판 영화나, 1982년판 영화와 비슷하다. 외계에서 온 괴물이 사람들 사이에 숨어들어 사람들을 위협한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고립된 이상한 지역에 사람이 모여 있고, 그곳에 있는 여러 사람들 사이를 이상한 괴물이 돌아 다니며 위협한다는 이야기 구조는 1938년의 소설판에서부터 표현 되어 있다. 이상한 지역에 모여 있는 등장인물들은 그곳을 돌아 다니는 괴물의 정체와 목적을 알 수 없어 더 공포에 질린다. 반대로 그 괴물에 대한 사실이 조금씩 밝혀지는 동안 독자는 이야기 내용에 궁금증을 갖고 빠져 들게 된다. 이런 방식으로 이야기를 구성하는 것 역시, 이후 많은 다른 소설, 영화 속에 퍼져서 유행한 방식이다.
이 소설 <거기 누구냐>가 그런 방식의 원조라고 본다면 틀린 말이겠지만, 그런 이야기 방식을 유행시키는데 한 역할을 담당했다고는 말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소설의 영화판인 <다른 세상에서 온 괴물>과 <괴물>을 통해서 공포물의 한 방식을 널리 퍼뜨리는 씨앗이 되었다고 보는 정도는 무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스위트홈>은 남극의 연구소가 아니라 낡은 아파트를 무대로 삼고 있다. 한국의 현대 도시 느낌을 잘 살리는 곳을 활용하는 모습은 이런 전통이 계승하면서도 현대 한국에서 나온 이야기다운 개성도 같이 살리고 있어서 재미를 더하는 느낌이다.
무리를 해서 좀 더 파고 들어가 보자면, 소설 <거기 누구냐> 역시 H.P. 러브크래프트의 소설 <광기의 산맥에서 (At the Mountains of Madness)>의 영향을 받은 것 아니냐는 이야기를 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거기서 더 나아간다면, <광기의 산맥에서>가 19세기 미국의 위대한 작가 에드가 앨런 포의 <아서 고든 핌의 모험>에 영향을 받아서 나왔다는 이야기도 해 볼만 하다.
이런 옛 소설들은, 전설과 신화 속에 나오는 괴물과 귀신 이야기와는 색다른 공포와 괴물을 제시했다. 소위 코스믹 호러(cosmic horror)라고 부르는, 넓디 넓은 우주에서 우리 사람은 너무나 하찮은 것이며 우리가 도저히 이해할 수도 없고 대적할 수도 없는 어마어마한 것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는 데 대한 알 수 없는 공포감을 들이민다. 이런 이야기들은 무서운 이야기라고는 하지만, 예전부터 내려오던 사악한 악령이 돌아왔다는 내용을 다루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기도를 열심히 하면 내쫓을 수 있다는 악마나 귀신 같은 어떤 종교나 풍습 속에서 정해진 현상을 다루는 것도 아니다. 대신, 코스믹 호러를 살리는 이야기들은 왜, 어떻게 벌어졌는 지도 알 수 없는 해괴한 일을 겪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어떻게 이해해야 할 지도 알 수 없는 것을 마주하는 두려움을 보여 주고자 한다.
<괴물>에서 <아서 고든 핌의 모험>까지 이어지는 외계 괴물 영화의 계보 말고도, 사실 <스위트홈>에서 그 못지 않게 중요해 보이는 다른 괴물 이야기의 흔적을 찾는 것도 가능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기괴한 괴물로 변화하는 사람들의 모습이나, 그 괴물을 대하는 등장인물의 태도를 보면 일본 만화가 나가이 고의 만화와 그 만화에 영향을 받은 다른 만화들과 비슷하다는 느낌이 든다. 괴물 모습의 면면에서 그 세부 묘사 중에는 일본 공포 만화의 거장인 이토 준지 만화에서 보던 묘사와 닮아 보이는 것도 있다고 나는 느꼈다.
사람의 욕망과 마음 상태가 흉칙하게 변한 괴물의 모습과 행동에 반영된다는 소재 속에는 뿌리 깊게 자리 잡은 전통적인 괴물 이야기와 연결되는 대목도 보인다. 예를 들어, 신라 승려 도안(道安) 이야기는 흥륜사라는 사찰에 살던 늙은 승려인 도안이라는 사람이 불경에는 밝았지만 음식 타박을 잘 하는 성격이라서 음식이 마음에 안 들면 몽둥이를 휘두르며 살았는데 그러다가 크기가 30미터 쯤이나 되는 아주 거대한 뱀으로 변해버렸다는 줄거리다. 이와 비슷한 형식으로 악한 사람이 흉칙한 모습의 짐승으로 환생 했다는 형태의 전설은 전국 각지에 다양한 형태로 내려오고 있다. 나는 그 비슷한 이야기들이 퍼져 돌아 다니는 한국 문화의 감상과 사상이 <스위트홈>에도 보인다고 생각한다.
신라 승려 도안의 이야기는 기록이 된 것은 8세기 중국 책인 <석문자경록>이므로, 아마 한국에는 그 이전에 이미 퍼져 있던 전설이었을 것이다. 즉 이런 부류의 이야기가 한국에 돌아 다닌 것은 족히 1200년 이상은 되었다는 의미다. 그렇게 보면 <스위트홈>은 1200년 동안 돌던 이야기가, 여러 나라, 여러 줄기의 이야기들과 섞이고 엮이면서, 더 새롭고 더 신선한 우리 시대의 환상으로 나아 가고 있는 현장이었다고 할만 하다.
앞으로는 더 다양하고, 더 신기하고, 더 이상한 이야기들이 나타나기를 기대하게 해 주는 좋은 신호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또 한 편으로는 탄탄하게 이어져 내려온 여러 나라, 많은 괴물 이야기들의 바탕 위에서 쉽게 상상할 수 없었던 새로운 곳을 만들어 내려는 시작으로도 좋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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